IMF이후 273명으로 줄였다가 비난 여론에도 4년 만에 원상회복
여야 겉으론 획정위 독립성 보장, 김문수 "선관위에 획정 맡겨야"
하태경 "국회가 손 못 대도록 법제화"… 입법화 과정 누더기 될 소지 높아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정치권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이다.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3대1에서 2대1로 조정한다면 과소 선거구는 통폐합 대상이 불가피하고 과대 선거구는 갈갈이 찢어져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통폐합지역 의원과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번에도 전체 틀을 바꾸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유불리만 따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간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의원정수 증원, 비례대표 축소, 짬짜미 선거구 획정 등으로 지역구 의석을 꾸준히 확대해 온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여야가 ‘밥그릇 챙기기’에 함께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비등하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 돌파하나
소선거구제가 부활된 1988년 13대 총선 이후 국회의원 정수가 축소된 것은 2000년 16대 총선 직전에 299명에서 273명으로 줄인 게 유일하다. 여야는 국제금융위기(IMF 사태)에 따른 고통 분담을 내세웠지만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에 대한 비판 여론에 떠밀린 탓도 컸다. 16대 총선에 앞서 시민단체의 낙천ㆍ낙선운동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 정치권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비등했다.
그러나 여야는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의원정수를 299명으로 원상회복시켰다. 4년 만에 지역구 16곳을 포함해 의원정수 26명을 늘린 것이다. 총선에 앞서 2001년 헌재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4대1에서 3대1로 조정하라고 결정하자 ‘밥그릇 늘리기’라는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갖은 핑계를 대며 여야는 국회의원 정원 확대에 합의했다. 여야는 ▦IMF 관리체제 졸업 ▦인구 증가 등의 사정 변경을 이유로 들었지만 당시에도 ‘인구편차를 줄이면서 의원 정수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과소 선거구의 지역 대표성이 심각히 침해당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이번에도 지역구 감소가 불가피한 영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의원정수 증원 요구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은 “현재 의석수가 유지된 것이 30년이 넘었다”며 “그 동안 인구 증가 등을 감안하면 의석 수를 늘릴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도 인구 대비 국회의원 정수가 적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감안할 때 증원 주장이 힘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비례대표 축소에도 눈독
의원정수 조정과 맞물려 비례대표 의석 수 조정도 쟁점이다.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의원정수를 늘리기 힘든 현실을 고려할 때 당 지도부가 전권을 쥔 현 공천 구조에서 ‘무늬만’ 직능대표 성격을 가진 비례대표 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선거구별 표의 등가성 문제가 지적되자, 여야는 의원정수를 299석으로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2석 줄이는 대신 지역구 2곳을 신설했다.
인구편차(2대1) 하한선에 미달하는 경북 영천을 지역구로 둔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비례대표를 줄이는 대신 검증된 지역구 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정우택 의원도 “비례대표 수를 줄이면 인구편차의 기준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을 증원하지 못할 경우엔 비례대표 수를 줄여 지역구 신설 몫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ㆍ노인ㆍ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계층과 이공계 등 정치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창구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계층ㆍ분야 별 전문성을 갖춘 비례대표 축소는 시기상조이자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사회 분야별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창구의 편차가 뚜렷하기 때문에 비례대표 축소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분야별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는 앞으로 늘어나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여야의 공천제도 개혁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선거구획정위에 생사여탈권 줄지도 의문
여야는 현재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성 보장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현실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사실상 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독립기구에 전적으로 맡기는 셈이어서 향후 입법화 과정에서 거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여야가 혁신경쟁에 나서면서 독립적인 선거구획정위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눈 여겨볼 대목이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은 “선관위에 선거구획정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같은 당 하태경 의원도 “3일 열리는 혁신위 회의에서 선관위 산하의 독립된 선거구획정위에서 만들어진 안을 국회가 수정ㆍ개정을 불가능하도록 법제화 하는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위원장도 “선거구획정위를 독립기구화하고 거기서 결정된 것은 국회가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국회의장 산하 자문기구인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 조정안을 존중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다 보니 여야는 그 동안 선거구획정위안을 존중하기 보다는 이해당사자인 의원들이 참여한 정치개혁특위에서 짬짜미 합의를 통해 선거구를 획정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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