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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마음을 잇는 가을 편지

입력
2014.11.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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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문 미국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공과대학은 글쓰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글쓰기 강사 교육용 예산에 1년에 200만 달러를 쓴다. 이공계 대학이 주축인데도 글쓰기에 엄청난 예산을 투여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해도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천재성이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MIT는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값진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글쓰기를 전 학년에 정규과목으로 두고‘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글쓰기를 활용한 소통능력의 중요성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과 SNS의 범람으로 단문과 단순한 의사표현에 익숙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 읽는 사람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문맥도 잘 연결되지 않으면 좋은 글이라고 볼 수 없다.

좋은 글쓰기에는 편지만한 게 없다.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을 쓸 것인지, 받는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담아야 하고, 게다가 중간중간 문맥이나 단락을 부드럽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지는 역시 손편지다. 차가운 키보드를 두드려 쉽게 지우고 쓴 이메일과 달리 펜을 들고 하얀 종이에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면 누구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미사여구를 나열하거나, 유명한 글귀를 인용하면 멋스러움은 있을지 몰라도 감동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편지는 꾸미는 데서 시들고 진실한 데서 피어난다고 한다.

최근 한 통의 편지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소개한 것으로 50년 만에 한글을 배운 할머니가 한국 전쟁 때 전사한 남편에게 쓴 편지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쓴 편지는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맞춤법도 틀린 게 많다. 하지만 그가 몇 십년간 가슴에 담아온 그리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하늘나라에서 너무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남편이 못 알아볼까 봐 걱정하는 대목에서는 우리의 가슴까지 먹먹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손이 아닌 발로 쓴 편지 한 통이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줬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여자 200m T36등급 결선에서 우승한 전민재씨는 결승선을 통과한 후 장문의 발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저를 응원하는 가족과 모든 분들의 사랑을 채찍 삼아 더욱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못생긴 전민재 선수가~ ㅋㅋㅋ.”라고 쓰여 있다. 뇌성마비 지체장애 1급인 그는 손도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발로 글씨를 쓰고 그 발로 달린다. 열다섯 살 때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고 엄마에게 아픔의 눈물 편지를 썼던 그였지만, 서른일곱 살에는 금빛 물든 감동의 눈물 편지를 쓴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매일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리운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가슴 한쪽에서 손짓을 하는 시기이다. 뒹구는 낙엽을 보며 누군가 그립다면 펜을 들어 편지를 쓰자. 하얀 종이에 쓴 한 글자 한 글자는 받는 사람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마법이고, 쓰고 지우며 다시 쓴 편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다. 특히 전국 우체국에서는 ‘편지! 소통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Soul Korea 5000만 편지쓰기’ 축제를 8일까지 열고 있다. 속도로 대변되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소통도구인 편지를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마련됐다. 누구나 편지를 써 봉투에 사랑의 하트를 표시하고 우표를 붙여 보내면 된다.

영화 ‘Her’에서 다른 이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소통하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사만다를 떠나 보낸 그는 전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내 마음 속에는 네가 한 조각 있다’라며 그리움을 전한다.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이 가을, 한 통의 편지를 쓰자. 그러면,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지 않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줄 것이다.

김준호 우정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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