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로봇 문화, 로봇 기술 발전 이끌어
웹툰에서 촉발된 테슬라 박물관 건립 계획
과학, 문화로 정착돼야 발전 가능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로 ‘우주소년 아톰’과 ‘철인 28호’가 있었다. 훨씬 이후에 나온 마징가Z와 로봇태권V 만큼이나 당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초등학생 시절, 우주소년 아톰과 철인 28호는 나의 꿈이었다. 이 다음에 커서 지구정복을 노리는 악당을 물리치는 로봇을 만들 거라고 다짐하곤 했다. 물론 중학생이 되어 철이 들면서 꿈은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주 현실적, 그러니까 좋은 대학에 진학해 안정된 직장을 얻는 걸로 최종 낙착되었지만 말이다.
인간과 닮은 피조물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어쩌면 인간 DNA에 새겨진 본능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간은 무려 2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이미 정교한 형태의 돌인형을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에도 청동인간 탈로스가 등장한다. 탈무드에도 ‘골렘’이라는 진흙으로 빚은 인간 전 단계의 피조물이 묘사되어 있고, 이걸 연상시키는 ‘골룸’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봇’이란 단어는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펙에게 돌아간다. 그의 연극에서 로봇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공장에서 노동만 하는 기계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로봇들이 스스로 진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비이성적인 인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결국 인류를 멸종시키고 로봇들로 구성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한다. 이 연극은 유럽 대도시에 이어 미국에서도 200회 이상 공연되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이 연극은 놀랍게도 불과 3년 후인 1924년 일본에 상륙했다. 일본 사람들은 로봇이란 생소한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인조인간’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로봇’이란 단어는 없었어도 일찍이 메이지 시대 차(茶)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인형들이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나중에 커서 알고 실망했지만 우주소년 아톰과 철인 28호도 일본 태생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인간처럼 걷고 계단도 오르는 로봇이나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로봇을 개발했고, 비록 상업적으론 성공하진 못했지만 소니사는 애완견 로봇 ‘아이보’를 출시하여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로봇 문화가 오랜 세월을 통해 정착되면서 일본인들의 로봇 사랑으로 이어지다 보니 로봇 연구가 활성화된 것이다. 일반 대중이 로봇 기술을 알리 만무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로봇 연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과학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문화로 정착돼야 과학이 발전한다는 말이다. 옛날 18세기 유럽에선 상류사회에서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광학기계가 유행했다. 귀부인들이 살롱에 모여 현미경으로 작은 곤충들을 관찰하면서 놀았다. 이런 사회적 풍토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거의 동일한 시점에 왕립과학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국가차원에서 과학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과학자 뉴턴은 왕립과학아카데미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스타 과학자와 위대한 연구 뒤에는 그걸 받쳐주는 시스템, 즉 문화가 존재한다.
지난 주말 뉴욕 근교 롱아일랜드에서는 이색적인 파티가 열렸다. 어느 무명 과학자를 기념하기 위한 과학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기 위한 행사였다. 그 과학자는 20세기 초 토마스 에디슨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니콜라 테슬라. 전구, 무선통신, 레이더, 교류 송전시스템 등 수없이 많은 발명을 한 천재 과학자다. 그러나 경제적으론 평생 어렵게 살다가 결국 파산한 뒤 작은 호텔 방에서 사망한 불운의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박물관 설립 계획을 처음 제안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매튜 인먼이라는 평범한 만화가다. 그는 웹툰에서 테슬라를 재조명하면서 테슬라의 개인 실험실이자 공장이었던 건물을 매입해 과학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의 만화를 보고 마음을 움직인 사람들이 돈을 모아 실험실 부지를 사들였다. 수백억원이 소요될 박물관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 단계지만 성숙한 과학문화와 그 문화 속에서 폭발하는 대중의 힘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잠재적인 테슬라나 에디슨,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이 있다. 이들을 발굴해서 갈고 닦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과학이 더 이상 과학이 아니고 연극, 소설, 웹툰, 드라마 같이 삶의 일부로 인식이 될 때 우리 과학은 본 궤도에 오르고 노벨상도 가능할 것이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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