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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피아'는 누가 관리하나

입력
2014.11.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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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에서도 장관급으로 일하기 때문에 실명을 밝힐 수 없는 한 고위 관료가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세종시 이전 공약을 문제 삼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 대사 중에서 세종시를 찾아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먼 시골까지 온다면, 아마 우리 정부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못사는 나라일 것이다.” 그는 ‘못사는 나라’의 이름까지 거명했으나, 이 역시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다.

이 관료의 지적처럼 국제 사회에서는 원칙적으로 각 나라가 동등한 주권을 갖고 있지만,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고려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내세운 명분 중 하나가 ‘소국이 대국을 거역할 수 없다’이니, 이는 동서고금 모두 통하는 모양이다. 이성계가 그때 그렇게 ‘사대’를 통치방침으로 정하면서, 우리가 5,000년 역사의 최대 성군으로 꼽는 세종도 명나라에 공녀를 바쳐야 했다.

국가 간의 우열 관계는 상대적이다. 외교사절이 세종시를 찾아야 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여유가 있는 처지지만, 그 상대가 미국이라면 아쉽고 눈치를 봐야 하는 쪽은 대개 우리다.

과거 한미 관계가 그랬다. 우리가 힘없던 시절 주한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칙사 대접을 받았다. 대표 사례가 기자의 눈(▶관련기사 보기)에서도 소개한 그레고리 헨더슨이다. 헨더슨은 미국에 줄을 대거나, 비자를 받으려는 고관대작들로부터 가치를 따질 수도 없이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선물로 받았다. 그게 바로 불법유출 논란이 일고 있는 ‘헨더슨 콜렉션’이다.

양국의 비대칭 관계는 아직도 현실이다. 주한 미 대사관에 대한 국무부의 2011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캐슬린 스티븐슨 대사는 우리 정부 장관급 인사와 필요하면 언제나 만났다. 또 방한한 미국 인사들을 동반해 대통령과도 수시로 얼굴을 맞댔다. 반면 주미 한국 대사가 미국 각료와 대통령을 그렇게 자주 만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과 한번 인연을 맺은 미국 관료나 의원들이 현직을 떠난 뒤에도 한국 관련 업무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건 드물지 않다. 현역 시절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많은 미국인들이 ‘지한파’로 불리며 한국계 기업의 고문으로 일한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게 한미경제연구소(KEI)라는 곳이다. 소장은 10선 하원의원 출신의 은퇴한 정치가, 부소장은 주한 대사관 전 부대사, 사무총장은 소장의 의원 시절 보좌관이다. 퇴직 관료가 현직에서 물러난 뒤 산하단체로 내려가 인생 2모작을 하는 구도로 본다면 우리나라 ‘관피아’와 판박이다. 그렇다면 ‘미(美)피아’라고 불러야 할까.

은퇴한 공직자의 경험과 지식을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관피아’, ‘군피아’등의 이름을 붙여가며 일률적으로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그런데 굳이 ‘미피아’라는 말까지 만들어서, 시비를 거는 건 대한민국 납세자로부터 연간 40억원을 지원받는 이 조직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국무조정실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부설 조직이고 기획재정부 영향력 아래 있지만, 활동 무대는 주미 대사관 관할의 워싱턴이다. 국조실과 기재부가 관리하기에는 너무 멀고, 외교부는 공식 권한이 없다. 2012년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소장의 자질에 대한 의원 질문에 대사관측은 “KIEP 산하여서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피아가 문제인건 단순히 퇴임 관료가 기관장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만의 담합으로 조직 경쟁력을 해쳤기 때문이다. ‘미피아’도 마찬가지다. 경륜 있고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의 퇴임 관료와 외교관이 한국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건 당연히 권장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 기준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400만 달러를 쓰면서도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는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다르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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