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국문과 선생님 중에 한 분은 잘못된 표현, 틀린 말들을 대하면 화가 난다고 했다. 나는 그런 편은 아니다. 워낙 느슨한 편이고 유행어나 외래어 사용에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노래방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쳐다보다 띄어쓰기나 맞춤법 틀린 것을 바로 잡고 싶은 충동이 술기운을 뚫고 올라오면 직업병이 될까 봐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오늘도 그랬다. 딸아이들은 엉망으로 말한다. 스티커에 집착하는 둘째에게 내가 먼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가 좋아, 스티커가 좋아.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한다. 스티커가 좋아. 이것 봐라 스티커가 좋단다. 그러니까 눈치가 좀 있는 첫째가 말한다. 나는 엄마가 더 좋아요. 나는 엄마가 부풀어 오르게 좋아요, 한다. 엥? 좋으면 좋지, 부풀어 오르게는 또 뭐란 말이냐.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스티커보다는 조금 더 좋다는 말일 수도 있고, 커다랗게 부푼 빵 같은 것을 무지 좋아하는 걸 감안하면 엄청 좋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나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일 수도.
문법적이고 바른 말들이라도 들으면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핵심만 교묘히 피하기, 두루뭉술 물 타기 같은 것. 청문회, 연설문, 담화문, 보도문 같은 데 담긴 가지런한 말들의 공허함보다는 비문에 담긴 진심과 솔직함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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