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골프장에서 목격한 일이다. 그린 위에 올라가 있는 동반자의 노란색 공을 까마귀가 물고 하늘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더러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까마귀가 자기가 낳은 알로 착각한 모양이다. 물론 동반자들이 까마귀가 공을 물고 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벌타 없이 그 자리에 다른 공을 놓고 플레이를 계속하면 된다. 하지만 까마귀가 공을 물고 가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경우는 로스트 볼로 처리되어 2개의 벌타를 받게 된다.
▦ 까마귀는 매우 영리하다. 농작물에 피해를 많이 주지만 쫓아내기도 쉽지 않다. 미국 골프장 인근 까마귀들은 골퍼들의 주변을 배회한다. 골퍼들이 음식을 골프백이나 카트에 넣고 다니기 때문이다. 골프카트에 김밥이 있으면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잽싸게 꺼내서 물고 달아난다. 심지어 골프백의 지퍼를 부리로 열어 음식을 꺼내가기도 하고, 카트에서 먹이를 훔친 다람쥐를 붙잡아 공중에서 떨어뜨린 뒤 먹이를 빼앗기도 한다. 딱딱한 빵 조각을 훔친 뒤엔 물가로 날아가 적셔서 먹는 것을 본 적도 있다.
▦ 까마귀는 동서양에서 보통 흉조(兇鳥), 즉 불길한 새로 여겨진다. 검은 외모도 섬뜩하다. 괴기한 울음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특히 까마귀 울음소리와 관련된 얘기들이 많다. ‘까마귀가 울면 그 동네에 초상이 난다’는 속설도 있다.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 ‘식전 마수에 까마귀 우는 소리’ 등등 이미지가 부정적이다. 서양에서도 까마귀가 집 주위를 날면 죽음의 전조라 하고, 까마귀 무리가 소란스럽게 하늘을 날면 전쟁을 암시한다고 한다. 까마귀 무리는 리더가 없어서 오합지졸(烏合之卒)로 흔히 비유된다.
▦ 좋은 이미지도 있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신화적인 존재로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나타난다. 왕이 신하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것을 까마귀가 알려 줬고, 그래서 왕은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찰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는 신화도 있다. 까마귀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까마귀는 부화 이후 일정 기간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그 이후는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 놈을 효조(孝鳥)라고도 부르며, 반포지효(反哺之孝) 애기의 근거가 되었다.
조재우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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