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관이 18대 대선과 19대 총선을 1년 앞둔 2011년 유력 출마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세 판단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국에 오래 근무한 미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은 한미동맹에 관한 한국인의 여론이 변덕스럽고 쉽게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미국 국무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11년 주한 미 대사관’에 대한 업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캐슬린 스티븐슨 대사와 마크 토콜라 부대사는 한국의 고위 공직자와 정ㆍ재계 유력인사와 수시로 접촉, 미국 정부의 대 한반도 정책 수립에 필요한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했다. 보고서는 특히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스티븐슨 대사에 대해 “한국에서 연예인급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국가안보보좌관과 외교부 장관 등 한국 고위관료와 정기적으로 만날 뿐만 아니라 미국 인사의 청와대 방문 기회를 이용해 대통령과도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 감사팀은 이런 만남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미 대사관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감사보고서는 대표 사례로 ▦2012년 총선과 대선 출마 예상자에 대한 신상정보와 ▦세계에서 가장 급박하게 진행되는 한국의 저출산ㆍ고령화가 한국 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꼽았다.
보고서는 또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인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공공외교’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당시 주한 대사관의 미국 외교관들이 한국 여론을 불신하는 정황도 공개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87%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응하는 안전판으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여론조사와 관련, 한국에 오래 근무한 미 외교관들이 “미국에 대한 한국의 여론은 쉽게 변하며(volatile), 미국에 대한 일반적 지지가 미국의 실제 이익이 걸린 개별 사안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보고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미관계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능숙한 미 외교관을 대량으로 길러내야 한다”며 미 국무부에 획기적인 양성 대책을 주문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감사팀은 “한국어는 굉장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이므로, 1인당 연간 57만달러(6억원)의 비용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서라도 한국어에 능숙한 외교관을 길러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어와 아랍어에 비해, 한국어는 고위직 승진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배우려는 지원자가 적다”며 “한국어 능통자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1년 8월 작성된 이 감사보고서는 일부 내용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비밀이 해제돼 이날 공개됐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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