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남은 분노와 비탄의 갑오년

우리는 비겁하면서도 정직한 존재

선장을 버리고 교감을 살려나가야

지난 7월 18일 이후 102일 만인 28일 선체에서 발견된 세월호 실종자 시신을 인양하지 못한 29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의 모습을 그린 추모 설치물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덧 11월이다. 갑오년도 이제 한 달 후면 저문다. 1894년 당시 유행했다는 민요가 생각난다.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거리다 병신(丙申) 되면 못 가리.” 갑오년에 부패를 척결하고 외세를 몰아내 나라를 일신하지 못하면 다음 해 을미년 허송세월하다가 병신년에는 나라든 백성이든 모두 병신 된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데 이어 1910년에는 경술국치로 일제에 합병됨으로써 우리나라는 국권을 상실했다.

그 동학혁명의 갑오년으로부터 120년이 지난 올해는 세월호의 갑오년이다.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지향점과 방향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4월 16일 이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갈등과 정쟁이 더욱 커지고 깊어졌을 뿐이다.

10월 27일 열린 세월호 사건 재판에서 선장에게는 사형, 나머지 선원 14명에게는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5~30년이 구형됐다. 승무원으로서 해운법에 의한 운항관리규정, 수난구호법 등을 지키지 않았으며 구조가 용이한 상황에서도 퇴선 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구형 이유다.

세월호의 선장과 함께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이다. 우리는 사실 비겁하게 배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일 수도 있고 수학여행의 인솔자로서 죄책감을 못 이겨 자살한 교감일 수도 있다.

을사늑약 체결에 항의하며 자진(自盡)한 충정공 민영환(閔泳煥·1861~1905)의 죽음을 듣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가 쓴 시가 있다. 君在臣先死(군재신선사) 母在子先死(모재자선사) 皆非臣子義(개비신자의) 無奈死於死(무내사어사). 임금이 계신데 신하가 먼저 죽고 어머니가 계신데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은 다 신하와 자식의 도리가 아니지만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을 어찌하리오. 그렇다. 사람은 죽어야 할 때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내가 교감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최근 한국언론문화포럼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소설가 김훈도 “우리는 선장일 수도 있고 교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을 소설화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김훈은 선장 아들의 눈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너무 어려워 쓰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선장+교감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속의 선장을 버리고 교감을 살릴 수 있을까.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1857~1924)의 소설 로드 짐 이야기를 해 보자. 주인공 짐은 1등 항해사로 첫 항해에 나선다. 한밤에 배가 좌초했을 때 선장과 짐 등 승무원 4명은 승객 800여 명을 깨우지도 않고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그런데 그들이 버린 배는 침몰하지 않고 군함에 의해 구조된다. 결국 선장은 자살하고, 혼자 재판을 받은 짐은 항해사 자격증을 박탈당한다. 항구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짐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면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옮기곤 했다.

그러다가 말레이반도의 외딴 섬 파투산에 간 짐은 주민들을 억압하는 식민지 권력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 ‘투안 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말레이시아 원주민어인 투안은 로드(lord)와 같은 말이다. 짐은 섬에 쳐들어온 백인 해적과 담판을 짓기 위해 단신으로 나선다. 그 해적이 추장의 아들을 총으로 쏴 죽이자 추장은 해적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짐을 처형하려 한다. 짐은 섬을 떠나 목숨을 구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떳떳하게 총알을 맞고 죽는다. 그는 배를 버리고 살아난 악몽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 자살과도 같은 최후를 맞음으로써 그는 죽고 난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로드 짐’으로 남았다.

얼떨결에 배에서 탈출해 목숨을 구한 로드 짐은 남들을 위하는 영웅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삶을 일신할 수 있는가. 새로운 삶은 결국 죽음으로 마감돼야 하는 것인가. 착잡하고 안타까운 11월이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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