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ㆍ남경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ㆍ312쪽ㆍ1만3,500원
탄생과 걸음마, 입학과 시험, 그리고 첫사랑과의 키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삶의 여정이다. 이토록 소소한 순간에서 철학적 통찰을 끄집어낸 책이 나왔다. 영국의 문학자이자 철학자인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은 누구나 겪는 인생의 20가지 통과의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짚는다.
서문에서 저자는 인생이라는 풍경 속을 철학자와 드라이브 한다고 상상해보라 한다. 조수석에는 플라톤이 자리를 잡았고 뒷자석에는 데리다, 사르트르, 니체, 하이데거 등이 동승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순간을 이들과 함께 여행하며 각 순간에 그들의 철학과 사상을 대입해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사르트르가 인용한 ‘내던져짐’을 새롭게 해석해 태어남을 “스포츠카를 받았지만 바로 열쇠를 잃어버린 것”이라며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임을 상기한다. 또 걸음마는 “지상에 자신의 장소를 만들고 일종의 자서전을 새기는 것”이며 첫 입학은 루이 알튀세의 말을 빌어 “이제 막 국가의 통제를 받기 시작한 국민”을 연상케 한다. 취업을 위해 분투하는 취업준비생이나 실수투성이인 신입사원을 ‘아니말 라보란스(일하는 동물)’에서 ‘호모 파베르(물건을 만드는 인간)’으로 재평가하기도 한다. 책은 철학용어 외에 영화 ‘델마와 루이스’, 마돈나의 노래 ‘라이크 어 버진’ 등 인생을 해석하기 위해 무궁무진한 소재를 끌어들인다.
책에서는 일상의 경험과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과정이 분절되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 4장에서는 “아버지가 옆에서 우리의 등에 손을 대고 함께 달리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게 아니다. 조만간 우리는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사이의 틈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불안’과 ‘분열’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낸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결정, 광기, 이성 등의 난해한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도 그의 철학을 ‘ 믿음과 의심의 갈림길’에 비유해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책이 그리는 인생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탐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렌트는 우리가 왜 취업을 하려 하는지, 스피노자는 왜 우리의 사랑이 위대한지, 헤겔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통찰하고 고심했던 철학자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철학을 쉽게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중간중간 두 세 번 다시 읽어봐야 할 문장도 있다. 번역투의 문장이 거슬려서이기도 하지만, 말랑말랑한 소재와 달리 깊이 있는 저자의 통찰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