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지음
책밭ㆍ448쪽ㆍ1만6,000원
2년 전 영화 ‘에반게리온: Q’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무렵이었다. 일본 큐슈 지역을 여행 중이었는데 후쿠오카의 한 극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20년이 지난 이 작품이 10, 20대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에바 오디세이’는 그걸 입증하는 책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 중 걸작 반열에 오른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종교ㆍ사회ㆍ인문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은 종교학 전공자이자 철학과 사회학을 두루 공부한 학자가 썼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로봇끼리 싸우는 20년 전 ‘만화영화’에 무슨 거창한 학문을 들먹이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그리 녹록한 작품이 아니다. 저자는 “단순한 로봇 만화의 틀을 벗어 한편의 심리극 혹은 휴먼드라마 때로는 철학적 영화”라고 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20년간 온갖 ‘에바 담론’이 쏟아져 나왔음을 인지하면서 “에바를 단순 해석하는 것에 머물지 않겠다”며 “에바 스토리 안에 녹아있는 인문, 종교, 문화적 콘텐츠의 ‘계보적 규명’을 시도”하겠다고 다짐한다. ‘에반게리온’ 팬이라면 1화부터 26화까지 꼼꼼하게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한 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책에 반가움을 느낄 듯하다. 특히 ‘에반게리온’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작품 속 다양한 종교적 코드를 읽어내는 1장부터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것이다.
‘에반게리온’은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소외, 타인과의 관계, 사이보그의 정체성, 윤회 등 순수 문학 못지않게 다양하고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다룬다. 그 중의 핵심은 사람과 관계에 대한 질문들이다. 저자는 작품의 플롯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그 안에 담긴 인문학적 맥락을 살핀다. 때론 작품의 핵심을 파고들기도 하고 때론 작품에서 벗어나 옆으로 빠지기도 한다.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꼼꼼하게 읽어낸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다만 숲을 보듯 작품을 전체로서 분석하려는 시도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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