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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거듭 읽되 몰입하지 말라

입력
2014.10.3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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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파게 지음ㆍ최성웅 옮김

유유ㆍ256쪽ㆍ1만2,000원

“천천히 읽는 게 불가능한, 느린 독서를 할 수 없는 책이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실제로도 그러한 책은 존재하는데, 바로 우리가 읽어야 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책들이다.”(9쪽)

속도가 최고의 미덕인 이 시대의 끝은 어디를 겨누고 있을까. 그리 멀지도 않은 19세기, 프랑스에는 저 같이 주장한 인문학자가 있었다. 뼛속까지 인문주의자였던 에밀 파게가 정리한 독서법이다. 느리게 읽기와 거듭 읽기. 의외로 그 방법은 단순 명료하다. “확실한 건 우리 시대는 책을 읽는 사람을 위한 시대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173쪽) 인터넷 시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도 시대적 간극을 느끼기 힘든 것은 저처럼 책 읽기란 어느 때든 비주류라는 사실 때문이다. 파게가 권장하는 방법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첫인상에 속지 않는다, 자신을 몰각해 버리는 일이 없다, 게을러지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단박에 구별할 수 있다…느리게 읽어야 하는 이유들이다. 거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작가를 훨씬 더 잘 알게 된다, 세부적 문제를 즐긴다, 작가를 자신과 비교할 수 있다.

잘 길러진 독서가는 난해한 작가나 조악한 작가를 고르는 눈도 갖게 된다. 말을 꼬기 좋아하는 작가의 참모습은 그가 한 일을 정반대로 되짚음으로써 그 지적 허영을 간파할 수 있다. 비평가의 글은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난 다음 읽는 것이 좋다. 정반대로 자기애, 소심함, 몰입 등도 올바른 독서의 적이다. 독서는 결국 자신을 거듭 읽고 자신을 비교 분석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기 위한 작업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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