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남주인공의 말이다. 저 말을 듣고 스무 살의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었다. 당시의 나는 순정파였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않았으므로, 외려 무턱대고 품을 수 있는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첫사랑이 아득해질 무렵, 나는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때의 감정이 치기 같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여자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옆에 선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치려는 찰나, 여자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대체 언제 사랑이 변한 거야?” 남자는 골똘히 뭔가를 헤아리는 듯했지만, 입술만 오물거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사랑이 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사랑에 도량형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처음에는 길이, 무게, 부피를 구하느라 열을 올리겠지만, 결국에는 밀도와 비중을 따지게 될 것이다. 종래에는 빽빽한 감정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의 단단한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에는 결실이란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의 모양이 바뀌거나 색깔이 바뀔 수는 있어도 사랑의 순간은 ‘그때 거기에 그대로’ 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다르게’ 있을 뿐이다. 어김없이 봄날은 간다. 가을날도 간다. 사랑도 간다. 갔다가, 마침내 다시 온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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