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쉰 지 꽤 돼 몸의 긴장은 풀어졌지만 한창 배드민턴 칠 당시의 활력을 잊지 못한다. 코트 안에서 벌어지는 숨 가쁜 공방은 스릴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운동 후의 시원한 생맥주는 생활의 활력소이자 운동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했다.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 일주일이면 사흘 이상을 꼬박꼬박 다니며 운동을 한지 2년여가 되니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어깨가 결리고 무릎이 시큰거리는 증상을 무시했는데 슬슬 허리가 아파왔다. 허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허리가 아프니 도무지 힘을 쓸 수 없고 앉아도 누워도 편안하지 않으니 삶의 의욕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용하다는 한의원, 정형외과를 찾아 다니다 보니 두어 달 넘게 운동을 쉬게 되었고 조금 나은 것 같아 체육관에 갔다가 다시 허리가 도져 또 쉬게 되니 이제 배드민턴이라는 멋진 운동은 나와 영영 관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할 무렵 몇몇 회원들끼리 나직한 목소리로 무언가 얘기하곤 했다. “바닥이…”, “샤워시설이…” 운운했는데 나 같은 신참은 의논상대가 아니어서 온전한 정보를 듣지는 못했다. 나중에야 그 말들이 클럽 이전 논의였음을 알게 됐다. 우리 클럽의 체육관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멘트 바닥에 장판만 깐 바닥이었고 여름에는 에어컨 사용이 까다로운데다 겨울에는 온풍기 사용마저 쉽지 않았다. 마침 근처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의 체육관이 새로 완공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회원들의 마음이 동한 것이다. 코트가 4면에서 3면으로 줄지만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부상 위험이 적고 샤워장도 있으며 냉난방이 잘 된다니 얼마나 좋은가! 젊은 남자회원들의 열띤 노력과 클럽의 전ㆍ현직 임원들의 전폭적 지원 아래 이전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가 실시됐다. 나는 물론 이전에 적극 찬성이었다. 나의 허리 부상이 딱딱한 바닥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치료받느라 투표도 못했지만 이전에 작은 의심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전 찬성은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이전 반대논리는 이전 찬성논리를 조목조목 뒤집었다. 체육관 바닥이 딱딱하지만 대회에 나가지 않을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조심해서 살살 치면 괜찮고 샤워는 집에 가서 하면 되고 덥고 추운 것은 그때만 조금 참으면 될 것 아니냐, 게다가 옮겨갈 학교는 멀지 않냐는 주장이었다. 남자회원과 여자회원, 젊은 회원과 나이든 회원으로 표가 나뉘었다. 성별, 세대별 대결양상을 보이게 된 셈인데, 압도적인 반대에 조금은 멀어도 환경이 좋은 구장을 기대했던 회원들이 의기소침해진 것은 물론이다. 참으로 신기했다. ‘침묵하는 다수’의 힘이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사실이 말이다. 주변에서 여당 찍는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선거만 하면 여당이 압승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대학시절 야구응원을 자주 갔다. 대학야구대회 4강에 올라가면 모든 수업을 휴강하고 학교 전체가 야구장으로 옮겨가던 시절 얘기다. 야구장 갈 때면 여학생들은 “내가 가면 진다”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가면 이긴다니까”라고 외치곤 했다. 허풍이 아니고 실제 그랬다. 나는 예선 1차전부터 우리 학교의 마지막 게임 때까지 줄곧 야구장에서 응원한 열혈 팬이었다. 예선 리그를 거쳐 토너먼트로 16강에서 4강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승수를 쌓았겠는가. 나는 승리의 목격자였다. 여학생들이야 준결승 또는 결승전이 되어야 야구장에 갔지만 수업을 전폐하고 ‘달린’ 나는 이미 6, 7번의 승리를 지켜보았다. 당시 우리 학교의 실력은 잘해야 준우승 또는 4강 정도였으니 그녀들이 야구장에 올 때면 지는 게 오히려 정상(?)이었다.
상황은 하나지만 그 상황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전혀 다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옳다. 대학시절 야구장 가던 기억과 배드민턴 클럽 이전 찬반투표의 경우처럼 사람의 판단이란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요즈음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은 내 탓이 아니고 하수상한 시절 때문이라 우기고 싶다. 나만 그런가?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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