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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맛집의 또 다른 조건

입력
2014.10.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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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느 날 저녁 TV 프로그램에서 미식가들이 맛집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던 중 든 의문이다. 그날 미식가들은 음식 맛뿐만 아니라 재료의 품질도 살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갑자기 맛집의 기준이 궁금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맛집에 관한 글들을 읽어 보니, 대부분 음식 맛과 재료 등을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었다. 간혹 식당의 위치, 인테리어나 분위기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여러 재료로 제조된 음식이라는 상품을 식당이라는 공간에서 구매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음식의 맛과 재료, 인테리어 등이 맛집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재료와 식당만으로 음식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고 손님에게 제공하기 위해선 사람의 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맛집을 평가할 때는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살펴봐야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의 접객 태도 등도 고려해 식당을 평가한다. 종업원이 친절하지 않아 불쾌한 느낌을 받은 식당을 맛집으로 평가하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요소에 대한 평가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맛집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괜찮은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식당이어야 한다. 손님이 훌륭한 음식 맛을 즐기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불행하다면 그곳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고 멋진 인테리어를 갖췄다 하더라도 맛집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맛집에서 손님들이 누리는 행복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때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근로조건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오랫동안 맛집으로 사랑받은 식당들은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곳에선 30, 40년 동안 일한 직원들이 손님들을 대하고, 직원들에겐 다른 곳보다 더 좋은 급여를 제공한다. 하루 매상을 희생하면서도 일주일마다 하루를 쉬는 집들도 많다. 주인은 직원을 오랜 동료나 친구로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 역시 식당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이따금씩 찾는 직장 근처의 설렁탕 가게가 있는데, 얼마 전에 보니 파트 타이머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어 있었다. 습관처럼 공고문에 적힌 근로조건을 살펴보니, 그 식당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와 매주 1회의 휴일과 연차휴가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법에 따라 파트 타이머가 당연히 갖는 권리이고 그것을 지킨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노동법적 권리를 보장해 주는 주인의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나라의 많은 근로자들이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으며 일하거나 제대로 된 휴일이나 휴가를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가 유기농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개인의 건강에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농약 등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지구 전체의 환경오염을 피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곳을 찾아간다. 괜찮은 근로조건을 갖춘 식당을 맛집으로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노동법에 따라 근로조건을 갖추고, 파트 타이머에게도 최저임금보다 많은 급여와 휴일과 휴가를 주는 곳이 결국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우리가 좀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유기농 재료를 쓰는 식당을 찾는 것처럼, 괜찮은 근로조건을 갖춘 식당을 찾아가서 음식을 먹는 것은 어떨까? 이런 식당을 찾아가서 음식을 맛보는 것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미식가의 모습일 것이다.

사실 일상에 쫓기는 일반인들로서는 직원들의 근무 환경까지 따지면서 한 끼를 해결할 식당을 정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맛집을 찾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해 준다면, 일반 시민들이 그 정보를 얻는 건 쉬워질 것이다. 우연히 켠 TV에서 식당의 근로조건도 챙겨보는 미식가를, 음식의 맛과 재료뿐만 아니라 그런 조건을 따져 맛집을 소개해 주며 휴일에 그곳을 방문할 것을 권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이를 곧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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