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조사에서 1위에 오른 ‘복지국가’스위스에서 주민 수 천명이 “어린 시절 노동착취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영국 BBC방송은 29일 “1850년대부터 100여 년간 어린이 수십 만 명이 강제로 농가로 보내져 노동착취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고그니어트(75)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여덟 살 때, 거의 납치되다시피 한 낡은 농가로 끌려갔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없이 형 누나들, 어머니와 살던 그는 “어느 날 경찰 세 명이 집에 와서 나를 끌고 갔다”고 증언했다. 그는 “우리 집은 가난했고, 형제자매들 모두 같은 방법으로 끌려가야 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로 신분이 바뀐 뒤 일상은 너무 고단해졌다. 매일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일했고, 학교가 끝난 후에도 일을 한 뒤 오후 10시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양아버지는 자주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고그니어트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나를 때릴 정도로 성질이 난폭해 양아버지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은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힘든 점이 없느냐’고 물었으나 무서워서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며 “양부모가 때릴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아이들이 싼 값에 농장으로 팔려가는 일은 20세기 후반까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들이 마을 광장에서 공개 경매로 팔려 가는 일도 벌어졌다. 역사학자 로레타 세그리아스는 “당시 스위스는 부유하지 않았을 뿐더러 국민들도 가난했다”며 “농업이 기계화되지 않아 농가는 아동의 노동력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모를 일찍 여읜 고아나 미혼모가 낳아 방치된 아이들이 어렵게 살면 지역 사회가 개입했다. 당국은 이 아이들을 돌볼 가장 저렴한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아이들을 농가로 보내는 것이었다. 부모가 이를 거부하면 감옥에 보내졌다. 세그리아스는 “아이들이 일을 배워 성인이 되면 앞가림을 하도록 하는 게 당국의 목적이었다”며 “당시 스위스에서 가난은 사회 문제가 아니라, 오직 개인의 실패로 인식됐다”고 덧붙였다. ‘모든 성인 국민에게 한 달에 2,500스위스 프랑(약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복지국가 스위스가 감추고 싶은 과거다.
아동 노동착취는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1960, 70년대 서서히 사라졌다. 역사학자들은 “피해 아동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수십만 명에 달할 것”이라 추정한다. 1930년대의 어느 한 해 기록에 따르면 어린이 3만 명이 위탁 가정에 넘겨졌다. 이들은 성인이 돼서 가족과도 어울리지 못하거나 자살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스위스 중부 벨런버그의 박물관에서는 5년 전부터 ‘스위스 아동 노동착취’를 주제로 상설 전시회가 열려, 국민들에게 ‘어두운 과거’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바질 로거는 “피해자들의 역사가 비밀이어선 안 된다”며 “이들의 이야기를 퍼뜨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몇 년 사이 국가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국가가 노동착취를 당한 아동을 비롯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거나 억울하게 구금되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스위스 사회운동가 귀도 플루리는 지난 4월 ‘피해자 보상 문제를 국민 투표에 붙이자’는 청원을 넣어 10만 명이 서명했다. 이 청원은 아직 생존한 피해자 약 1만 명에게 5억 스위스 프랑(약 5,500억원)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플루리는 “국민들이 청원 취지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서는 최저임금 문제 등 사회 현안을 결정하는 국민 투표가 연간 10여 차례 정도 실시된다.
김지수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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