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겨냥한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과 관련, 마르주키 다루스만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방북 카드가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10년 동안 다루스만 보고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방북을 불허했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면서 중대한 상황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장에 오지도 않고 작성된 보고서는 신빙성이 없다’는 논리로 결의안에서 북한 최고지도부의 ICC 회부 조항 삭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또 이런 논의 과정에서 결의안 채택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29일 유엔 소식통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유엔 대표부의 북한 외교관들은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ICC 회부 권고를 막기 위해 중국, 쿠바의 도움을 받아 유럽연합(EU) 등과 막후 교섭을 벌이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EU 외교관들을 인용, 쿠바와 중국이 북한을 대신해 EU측에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방북을 조건으로 결의안에서 ICC 조항을 삭제하는 제안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EU측은 새로운 제안에 부정적이지만, 일단 협의는 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방북 카드를 내칠 명분이 없는 미국도 이날 다루스만 보고관의 방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 당국자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강제수용소 등 인권사각 지대에 대한 접근이 전적으로 보장된다면 유엔 보고관의 방북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과 인권 전문가들은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느닷없는 제의는 ‘최고존엄’이 타격을 받는 상황을 막기 위한 시간벌기용 꼼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움직임은 인권 개선에 대한 진정성 보다는 유엔총회 결의안을 피하기 위한 의도”라고 풀이했다. ‘김정은의 위신을 떨어뜨릴 결의안을 막으라’는 평양의 엄명을 받고, 북한 외교관들이 매우 절박하게 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VOA에 따르면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 라이츠 워치의 존 시프턴 아시아국장도 “유엔총회는 안보리가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하는 궤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벌써 준수했어야 할 국제의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보상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엔총회 결의안의 어떤 내용도 다루스만 보고관이나 유엔 인권기구 관계자들의 방북으로 교환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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