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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리아, 에볼라, 코리아

입력
2014.10.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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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제의 세계화 경향은 날로 커져

한국 간여 바라는 국제사회 기대 많아

정부와 국민의 소극적 의식, 전환 필요

올 1월 스위스 몽트뢰에서 유엔 주재로 열린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제네바 2차 회의. 4대 강국 등 주요 선진국을 포함한 30여개국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한국 대표로 연설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우리나라가 참으로 먼 길을 달려왔구나’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을 포함한 주요국 외교수장들이 경청하고 있었다. 조 차관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 다보스포럼에 간 윤병세 외교장관을 대신해 시리아 회의에 참석한 참이었다.

초년 외교관 시절을 돌아보면 유엔에서도 아시아 그룹 외에는 낄 자리가 없었고, 남북 이슈가 터질 때 미국, 일본에 허리를 굽혀 부탁할 수밖에 없었던 초라한 나라에서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지역문제 회의에 초청 받아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 차관은 이 자리에서 “6ㆍ25전쟁을 경험한 나라로서 내전으로 인한 어려움과 곤경에 남다른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며 “한국은 시리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알 아사드 정권의 폭정에 대한 민주화 시위로 촉발된 내전으로 시리아에서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20여만명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절반가량이 피난민 신세가 됐다. 시리아 내전에 따른 치안 공백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의 발호로 비화해 미국을 주도하는 국제사회가 응징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번 유엔 안보리 정상회의에서 IS 위협에 대응한 대테러 차단 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2009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세계에서 23번째로 가입했다. DAC는 가난한 나라에 지원을 하는 선진국 원조그룹이다. 원조를 받던 수혜국가에서 DAC에 가입하기로는 최초다. 노르웨이 개발장관 출신인 에릭 솔하임 DAC 의장은 빈곤퇴치와 경제성장 성공 사례로 한국보다 더 훌륭한 나라는 없다는 찬사를 했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가진 한국에 대한 기대와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지 않나 싶다.

공적개발원조(ODA) 국제회의가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것도, 서아프리카에서 확산되고 있는 에볼라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공조에 따라 우리 정부도 보건의료 인력을 파견키로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120년 전인 1895년 여름 ‘쥐 병’이라 해서 부적이나 붙이던 미신적 요법에 의존해 한 집 건너 장사(葬事)를 치렀던 콜레라 확산 당시 격리와 서양 약물로 맞섰던 서양선교의사들의 노력에 힘입었던 역사로 보건대 이런 격세지감도 없다. 하지만 인적, 물적 부담과 책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기대에 비춰 우리는 책임을 온전히 떠안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의료계 일각의 우려나 국립의료원 감염내과 간호사들의 사표 논란으로 보면 정부의 준비 부족과 함께 사회나 국민 의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해방 직후 미군들 사이에서 말장난 삼아 3가지 기피대상이 떠돌았다. 다이어리아(Diarrheaㆍ설사), 고노리아(Gonorrheaㆍ임질), 코리아(Korea)다. 미국의 입장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그런 나라가 지금 국제사회로부터 전면적인 책임을 요구 받고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런 위상을 갖게 됐다. 국제사회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던 역사와 지금의 경제적 성취로 본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낯선 느낌이다. 소국이 아니라는 국제사회의 기대 수준과 여전히 소국이라는 우리 의식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지 않나 싶다.

이제 시리아(Syria), 에볼라(Ebola)는 국제 문제에 대한 코리아의 간여정책을 가늠하는 일종의 척도가 되고 있다. 다양한 국제문제에 한국의 간여를 원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압력은 앞으로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나, 국민 모두 패러다임의 전환, 사고의 전환을 이뤄야 할 시기가 됐다. 국익을 위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진황 논설위원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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