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전 고양원더스 감독이 한화이글스 새 감독을 맡으면서 프로야구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28일 취임식부터 한화의 간판스타 김태균 선수를 향해 “3루에서 반쯤 죽을 것”이라며 혹독한 훈련을 예고했고, 팬들은 김 감독의 카리스마를 힘차게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김 감독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가 또 있습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입니다. 팬들 사이에서 김 감독 영입에는 김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야구단 측이나 그룹 임원들은 기존 한화 선수 출신 중 새 감독을 선택하자고 했지만, 김 회장이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몇 년 동안 하위권에 맴돌고 있는 팀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김성근 감독을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며 한화 팬들이 1인 시위까지 나섰다는 소식을 접한 김 회장이 ‘팬심’을 반영해 직접 나섰다는 얘기인데요. 일부 보도에서는 김 회장이 직접 김 감독에게 전화까지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룹의 한 임원은 29일 “회장님이 직접 통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말했는데요. 김 감독의 영입을 간절히 바랐던 팬들 입장에서는 김 회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겠죠.
김 회장은 한화이글스를 통해 대중, 팬들과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김 회장의 이런 모습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3년 전인 2011년 8월 7일 김 회장은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원정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잠실야구장을 방문했습니다. 김 회장은 2003년 대전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행사를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한밭야구장을 방문한 지 8년 만에 야구장을 온 것인데요. 이날은 부인 서영민씨와 장남 김동관씨도 함께 했습니다.
사실 당시 한화이글스는 하위권이었지만 한대화 감독 지휘 아래 역전승을 반복하며 팀 성적과 관계없이 야구판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고, 팬들은 한 감독에게 ‘야왕’이라는 별명을 달아주기까지 했는데요. 경기 후 김 회장은 그라운드에 내려와서 당시 한 감독과 포옹도 하고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금일봉이 담긴 봉투까지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김 회장을 발견한 관중석의 한화 팬들이 일본에 진출한 김태균 선수를 꼭 다시 데려와 달라며 ‘김태균’을 연호하자 갑자기 “(김태균) 꼭 잡아올게”라고 답했고, 팬들은 ‘화끈한 회장님’이라며 환호했는데요. 김 회장은 당시 ‘야구단 이미지가 그룹 이미지’라는 생각 아래 모든 계열사 직원들에게 야구장을 찾아 응원을 독려하는가 하면 한화 선수들의 한의원 진료와 보약 처방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한화 선발 투수 5명에게 전보를 보내 사기를 올려주도록 했습니다.
2012년 시즌을 앞두고 김 회장의 뜻대로 한화이글스는 김태균 선수를 데려왔고, 박찬호 전 선수까지 영입을 했지만 팀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결국 한 때 ‘야왕’이라 불렸던 한 감독은 시즌 중 자진사퇴를 했습니다.
그룹 회장이 야구단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려 하는 것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돈을 들여가며 스포츠 팀을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를 통해 그룹이나 최고경영자(CEO)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뜻도 담겨 있겠죠.
그러나 한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야구단 나름의 내부 사정도 있고, 다른 구단과의 관계 문제도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장이 직접 나서서 뭔가를 바꾸거나 결정을 내려버릴 경우 정작 현장에서 갖게 될 부담감입니다. 당연히 그룹의 의사 결정권자의 판단이니 뭐라 할 수도 없겠지만, 만약 그 결과가 모두가 원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경우 결국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요. 기업 경영도 그렇지만 늘 고위층의 결단과 실무진의 자율성은 그 절묘한 조화를 이루기가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스포츠팀의 운영을 통해 봐왔습니다. 한화그룹 한 임원도 “회장님이 부각되는 것이 사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는데요.
새로운 감독을 맞아 내년 시즌에는 한화이글스가 더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