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올해 세계은행(WB)이 선정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5위로 꼽혔다. 하지만 다른 해외 기관의 비슷한 평가들에서 한국은 올해 20위권에도 들지 못해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기획재정부는 한국이 WB의 올해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에서 전세계 189개국 중 5위를 차지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역대 최고 성적으로 G20 국가들 가운데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3위에 해당한다.
기업환경평가가 처음 실시된 2003년 20위권에 머물렀던 한국은 2011년(8위)부터 10위권 안에 진입한 뒤 지난해 7위를 기록하는 등 매년 등수가 올랐다.
특히 전통적 선진국인 미국(7위) 영국(8위) 독일(14위) 일본(29위) 프랑스(31위)보다 훨씬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게 눈에 띈다.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나라는 1~4위인 싱가포르, 뉴질랜드, 홍콩, 덴마크이다. 이를 두고 정부는 한국이 이번 평가에서 크게 선전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이다.
이날 국회에서 2015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평가 결과를 직접 언급하며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고 세계의 기업들이 동반자로 인정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기업들을 중심으로 체감 순위에 비해 실제 순위가 너무 높은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신력이라면 WB의 기업환경평가에 뒤지지 않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한국은 올해 모두 26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IMD와 WEF순위는 최근 매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환경을 두고 평가기관 별로 이처럼 순위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각각의 평가방식이 다른 데서 기인한다. WB는 모든 대상국들에 공통된 시나리오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평가한다. 한 나라에서 자본금 10억원으로 기업을 만든다고 가정하고 창업부터 퇴출까지 기업 생애주기를 10개 단계로 나눈 뒤, 각 단계 별로 얼마나 기업 활동하기 좋은지 평가해 합산하는 방식이다. 10단계는 창업, 건축 인허가, 전기 공급, 재산권 등록, 자금조달, 소액투자자 보호, 세금 납부, 통관 행정, 법적 분쟁 해결, 퇴출로 구성된다.
한국은 올해 창업(34위→17위), 건축 인허가(18위→12위), 전기 공급(2위→1위), 소액투자자 보호(52위→21위), 퇴출(15위→5위) 분야에서 순위가 상승했다. 이들 분야에 있어서는 외국에 비해 기업 활동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반면 재산권 등록(75위→79위), 자금조달(13위→36위), 법적분쟁 해결(2위→4위)분야는 순위가 떨어졌다. 세금납부(25위) 및 통관 행정(3위)은 순위가 전년과 동일했다.
이와 달리 IMD나 WEF는 정성적 평가의 비중이 정량적 평가보다 높다. 정성적 평가는 주로 기업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정성적 평가 비중이 높아지면 기업인들의 체감을 좀 더 잘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업인들의 주관적 감정에 크게 좌우될 수 있어 한계도 뚜렷하다. 가령 올해부터 새로운 규제가 생기거나, 법인세율이 올랐다면 기업인들은 외국과 비교한 상대적인 규제 강도나 법인세율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문조사에서 ‘기업하기 나쁜 환경’이라고 응답할 가능성이 높다.
정량적 평가도 맹점은 있다. 기업 환경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극히 일부만 지표로 만들어 평가하기 때문에 현실과 괴리가 생길 수 있다. 가령 기업 활동과 관련이 깊은 규제 총량은 WB의 평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평가들은 현상을 일부만 반영하는 셈. 외부 기관의 평가를 참고는 하되,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기재부 관계자는 “평가 결과 단점으로 지적된 분야는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 볼 예정”이라며 “검토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순위를 올리기 위해 현행 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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