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조작 주도 국정원 직원들에 "20년 넘게 국가안보 헌신 참작"
선양 총영사 등 2명엔 집유 선고, 사법시스템 마비시킨 중대 범죄
민변 "지나치게 낮은 형량" 비판
법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증거조작을 주도한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 안보에 헌신했다”는 등의 이유로 형량을 깎아줬다. 국가기관에 의한 중대 범죄라는 점에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김우수)는 모해증거위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모(48) 과장에게 징역 2년 6월을, 대공수사국 이모(54) 처장에게는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기소된 피고인 가운데 가장 ‘윗선’에 해당되는 이 처장에 대해서는 실형을 선고하고도 “범죄 사실에 관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어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한 권모(51) 전 대공수사팀 과장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이인철(48) 국정원 수사관 겸 주선양 총영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아 형을 살지 않아도 된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인) 피고인들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에게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훼손시켰다”면서도 “국가의 안보를 위하여 20년 이상을 헌신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 점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김 과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범행에 가담해 구속 기소된 외부 협조자 김모(62)씨와 또 다른 협조자 김모(60)씨는 각각 징역 1년 2월과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증거조작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논란을 낳았다. 김 과장 등이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의 2006년 5월 북-중 출입경 기록 등 중국 공안당국의 주요 문서를 위조, 검찰을 통해 법정에 제출한 사실이 지난 2월 중국 당국의 공식 회신을 통해 드러난 것이 발단이 됐다. 검찰은 사건 담당 검사 2명의 증거조작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리하고 김 과장 등에게 국가보안법상 날조죄가 아닌 형법상 모해증거위조죄를 적용해 기소하면서 거센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간첩죄 혐의를 받고 재판 중인 유씨를 모해할 목적으로 증거를 위조한 것이어서 법조계에서는 “특별법인 국가보안법을 우선 적용해 간첩죄에 상응하는 7년 이상의 징역형,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이 적용돼야 한다”는 중론이 일었지만 검찰은 법정형이 10년 이하인 형법을 적용한 것이다. 유씨는 이들의 증거 조작 정황 등이 드러나면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간첩)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은 지난 8일 결심공판에서 “수사 및 공판절차에 허위증거가 현출되는 것을 차단해야 할 수사기관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허위증거를 제출해 신성한 사법질서를 떨어뜨렸다”면서도 김 과장 등에 법정형 상한(모해증거위조죄의 경우 징역 10년)에 한참 못 미치는 징역 4년 이하의 형을 구형했다. 당시 이 처장은 “공판 검사의 그릇된 요청에 따라 새로운 출입경기록을 입수하려 했던 것”이라며 외부협조자 김씨(62)를 제외한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무죄를 주장했다.
피해자인 유씨 측을 변호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용민 변호사는 “자기 집에 든 도둑을 때린 사람에게도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는 법원이 국가 사법시스템을 마비시키고 대한민국을 공문서 위조국가로 만든 피고인들에게 지나치게 낮은 형을 선고했다”며 “20년 대공수사 경력을 인정해 감형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경력의 결과물이 간첩증거를 위조한 이 사건인 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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