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대한 진지한 발견과 탐구가 한국 소설의 여전한 과제임을 입증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과 경합, 단편들 특유의 예리함 적어 아쉬움
일곱 편의 단편과 세 편의 장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장편과 단편을 같은 탁자 위에서 논의하는 일이 가능한지, 대상 작품들을 읽으며 일었던 당연한 곤혹스러움이 심사의 첫머리를 열었으나, 문학적 뛰어남 외에 다른 어떤 잣대도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개성적이고 독립적인 문학상의 전통을 일구어온 한국일보문학상의 고심과 사려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난상토론이 예상되었던 심사는 의외로 쉽게 논의의 물꼬를 텄다. 단편의 경우 한두 작품에 대한 지지의 평가가 나왔지만, 얼마간의 아쉬움을 동반한 것이었다. 시대와 얽힌 존재적 질병의 증상이 내남없이 현시되고 목도되기 때문일 테지만, 기발한 심리적 질곡과 미로의 착상에서 소설적 탐구가 멈춘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럴수록 모종의 기시감은 승한 반면, 단편 특유의 힘으로 응집된 현실의 예리하고 믿음직한 발견은 적었다.
논의는 두 편의 장편으로 좁혀졌다. ‘천국보다 낯선’은 익히 알려진 영화에서 소설의 제목을 가져온 것처럼, 혼성적 모방과 인용의 장력이 나날의 삶을 좀더 강하게 간섭해 들어오는 오늘의 세상을 의식하면서 그러한 양태를 소설의 기법으로도 세련되게 구조화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뒤섞고, 지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면서 진행되는 방법론적 탐색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런 가운데 작가는 길항하는 의식들 사이의 편차와 중복을 보고, 그 변형의 흐름을 만들며 기지(旣知)의 세상 밖으로 통하는 어떤 상상적 길을 뚫으려 한다. 그러나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중심 인물의 존재 방식과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함으로써, 종내 낯선 소설적 여로로 우리를 이끌었다는 느낌까지 주지는 못했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지난 시대의 폭압적 정치 현실 속에서 진실과 존엄을 유린당한 무력한 개인의 이야기다. 낯익다면 낯익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낯설다기보다, 잊고 싶은 현실적 상처를 구석구석 들쑤시는 데서 오는 집요한 통증의 누적이 우리의 일상적 감각을 착란에 이르도록 뒤트는 느낌마저 준다. 그 통증과 뒤틀림을 견디며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아이러니로 충전된 쓰디쓴 웃음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소설에서 ‘블랙 코미디’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한 최대치를 보여주었다는 데 심사위원 모두는 동의했다. 소설의 배경과 세목에 대한 충실성, 위악을 절제한 풍자와 입담의 기율도 신뢰할 만했지만, ‘문맹(文盲)’이라는 숨기고 싶은 인간 자존의 공간을 끝까지 감싸고 지켜보며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에는 연민을 넘어선 단단한 기품이 있었다. 기발하고 기이한 이야기의 조립에 열중하는 이즈음 일각의 소설적 ‘유행’에 대한 균형추의 자리에서 보더라도, ‘차남들의 세계사’는 현실의 진지한 발견과 탐구가 한국소설의 여전한 과제임을 묵직하게 입증해 보인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김원우, 이인성, 정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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