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신문사 편집국만큼 분위기가 급변한 것도 드물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한 낮의 편집국은 조용하다 못해 괴괴한 느낌이 들 정도다. 전화통화하는 것 외에 대부분 컴퓨터 모니터 들여다 보는 데에만 정신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들어오기 전 원고지에 기사를 쓰던 20여년 전 풍경은 아주 달랐다. 그런 기억만 도드라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침 편집회의부터 저녁 마감할 때까지 하루도 고성과 논쟁, 육두문자가 없이 넘어간 날이 없었던 듯 하다. 전날 만신창이로 술 마시고 다음날까지 술이 안 깨 횡설수설하는 선배를 후배가 참다못해 번쩍 들어 대형 쓰레기통에 처박는가 하면, 국장단의 기사 방향에 불만을 품은 일선 기자가 편집국장실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는 것도 다반사였다. 다들 신문에 대한 충정과 동료애가 바탕이 된 것이라 큰 문제 없이 넘어간 것은 물론이다.
그 중에서 나에게는 까칠한 말투로 후배 기자를 엄청 조져대던, 나와는 10년이나 차이가 난 대선배가 기억에 생생하다. 시경 캡을 거쳐 당시 사회부 차장이었던 그 분은 취재내용이 엉성하거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가차없었다. 크진 않으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니가 기자냐”고 다그칠 때는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고 하늘은 노래졌다. 그럴 때면 내가 지렁이만도 못한 존재가 된 것처럼 절망했다. 잘난 기자는 아니었으나 그 모진 구박을 뚫고 기자로 생존해 있는 지금 와서 보면 그 선배 덕분에 인생에 대한 맷집 하나는 단단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편집국에서 기사 검색을 하다 ‘니가 기자냐?’는 제목의 신간이 나온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아, 그 선배구나, 그 선배가 책을 썼구나’하고 직감했다. 책을 구해 보니 역시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계신 그 선배가 급변하는 언론시장을 반추하며 쓴 것이었다. 내가 직접 봐서 알고 있었던 것, 전해 들었던 것, 미처 몰랐던 것 등 정말 먼지 켜켜이 쌓인 옛날 이야기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양 그려져 있었다. 취재원에 접근하기 위해 기관원 사칭과 공문서 탈취를 밥 먹듯이 하고, 선배가 지시한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되물으면 혼날 것이 두려워 엉뚱한 사고를 친 후배 기자들의 일화는 다시 봐도 배꼽을 잡게 한다.
“병원에 후송된 교통사고 피해자를 취재하려고 관할 용산경찰서 형사를 사칭해 전화했더니 병원 직원이 용산서 ‘형사’가 와 있다며 바꿔주었다. 더 이상 사칭이 불가능해 한국일보 기자라고 했더니 그 형사는 한국일보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당시 남대문경찰서를 출입하는 한국일보 기자 이름을 댔는데 형사 말이 더 걸작이다. 그 기자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별수 없이 신분을 실토하자 형사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42기 견습기자입니다. 지금 형사를 사칭해 응급실에서 취재중입니다. 죄송합니다.’”(사칭하다 후배에게 망신), “1990년대 초 한 수습기자가 외부인사, 정치부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벌인 일이다. 폭탄주가 돌고 다들 ‘꼭지’가 돌았을 때 1진 선배가 말석에 숨 죽여 있던 수습기자에게 ‘상 엎어라’고 지시했다.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술자리는 난장판이 됐다. 수습기자가 술상을 엎어버렸기 때문이다. 1진은 ‘지시를 한 내가 더 놀랐다’고 말하곤 했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실제로 엎어버렸다는 것이다. ‘까라면 깐다’는 신문사 위계질서의 대표적인 사례다.”(까라면 깐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창 젊은 기자들한테 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시절에나 있음직한 블랙코미디?
젊고 늙은 것 따질 것 없이 이런 취재 관행은 지금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뭔가 얻을 수 있는 건 있지 않을까. 자본에 굴복하고, 정권에 무력해지고, 이념을 추종하는 ‘기레기’들이라고 욕을 먹는 요즘에서는. 아마 기자로서의 사명감, 자존심 그런 것일 것이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책임 미루지 않고, 거만하거나 비굴해지지 않는 것. 비단 기자뿐 만이 아니다. 나라 꼴이 정말 우습게 돌아가는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할 질문이다. ‘니가 ○○냐?’
황유석 여론독자부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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