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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젊음과 자유

입력
2014.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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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29일, 컴백을 선언한 서태지가 김포공항으로 입국했을 때 공항에 갔었다. 화요일 아침, 원래대로 하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야 했지만 몇달전 학교를 그만둔 나는 팬과 기자로 가득한 김포공항을 어슬렁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공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그의 뒤통수로 여겨지는 뭔가를 보긴 했는데 확실하지 않다. 집에 돌아와서 텔레비전으로 달라진 그의 머리모양과 옷차림을 확인하고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처음 서태지와 아이들을 봤던 날을 기억한다. 텔레비전에 남자 셋이 나와 뭔지 모를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엄청 좋았다. 넋이 빠진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부모님이 투덜댔다. 저게 뭐냐, 저게 노래냐. 그렇게 나는 세대차라는 말을 이해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모두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틈 날 때마다 모두가 난 알아요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잘은 모르지만, 세대전쟁 같은 게 있다면 우리들이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그 때 서태지와 아이들은 젊음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젊음은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어떤 유산도 혈통도 물려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그 물음 앞에서 나이든 사람들은 당황했고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그것은 젊음이라는 이름의 자유가, 혹은 자유라는 이름의 젊음이 이뤄낸 혁명이었다. 그것은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승리의 순간은 짧았다.

사람들은 늙는다. 서태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돌아온 그는 여전히 젊음이 영원할 것을 믿는 듯 보였다. 현실에서 그가 살아가는 시간과, 그가 믿고 있는 시간 사이에서 틈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특유의 매력을 잃어갔다. 마치 몸은 다 커버렸는데도 어렸을 때의 옷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서 있는 어른 같았다. 어느 순간 서태지도 그것을 깨달은 것 같다. 최근 나온 새 앨범에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시대가 오래 전에 끝났음을 인정한다. 그가 젊던 시절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는 나에게 그것은 신기하게도 또 슬프게도 느껴진다. 그와 함께 나 또한 나이를 먹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약간은 서글프다. 하지만 진짜 슬픈 것은 돌아올 수 없는 젊음과 함께 그것의 동반자였던 자유 또한 놓아버린 듯, 아니 그래야 하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젊음을 놓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젊음을 포기하는 것이 결국 자유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이 듦, 성숙이란 대체로 사회적 제약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뜻한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은 물론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무들을 자유와 맞바꾼다. 혹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고독 혹은 사회적 고립에 대한 공포를 그런 의무들과 맞바꾼다. 결국 젊음과 함께 자유 또한 떠나 보낸다. 하지만 자유란 젊음의 다른 이름일 뿐인가?

젊음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인 이유는 그 시기에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일종의 면제 상태, 무죄의 시기. 젊은 시절의 자유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통제밖에 놓인 행운이다. 하지만 그런 선물 같은 자유만이 자유인 걸까? 반대로 긴 시간을 통해 사회적 속박과 개인의 일차원적 욕망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통해 실현 가능한 자유가 존재하며, 그것이야말로 가치있는 자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자유야말로 노인의 덕목이자 성숙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젊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 반짝거리는 젊음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목에 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음에 큰 관심이 없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에 나는 여전히 너무 젊으며 또 오만한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내가 더 이상 젊음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 동안 나는 젊음이라는 한 종류의 자유에 지나치게 속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슬퍼하고 또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다른 종류의 자유를 찾으면 되니까.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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