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보는 등 딴짓 하면 끌어내고 안정된 심장 박동수로 순위 가려
첫 우승자는 초등 2학년 여학생..."멍 때림, 가치 있는 일로 만들고파"
27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50명이 초점 없는 시선을 한 채 줄지어 앉아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망부석인양 우두커니 앉아있는가 하면 큰대(大)자로 사지를 뻗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제1회 멍 때리기 대회’에 출전한 참가자들이었다. ‘멍 때리다’는 말은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국어사전에는 없는 비속어다.
대회규칙은 간단하다. 최대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으면 된다. 단, 큰 동작을 취하거나 휴대폰을 보는 등 ‘딴짓’을 하면 ‘대회장에서 질질 끌려 나간다’는 게 규칙이다. 흥미로운 광경에 외국인 관광객 등 구경꾼들도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심사위원들은 10분 마다 참가자들의 심장 박동수를 기록했다. 최초 심박수에 비해 꾸준히 안정된 심박수를 나타내면 점수를 많이 얻는다. 관중들도 참가자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해 ‘가장 적나라하게 멍 때린’ 참가자에게 스티커를 붙여준다. 우승자는 이 둘을 합산해 선정하는데, 첫 대회 우승자는 초등학교 2학년인 김지명(8)양에게 돌아갔다.
대회 주최자인 퍼포먼스팀 ‘전기호’의 웁쓰양(38)과 저감독(34)은 “속도와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멀리 떨어지는 체험을 하자는 것”이 취지라고 했다. 웁쓰양은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멍 때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며 “뇌가 ‘제발 쉬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는데도 우리 사회는 ‘멍 때림’을 시간 낭비라고 규정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가치 없다고 규정한 것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들고 싶어 대회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대회 시간을 월요일 점심시간으로 택한 것도 월요병에 시달린 직장인들이 힘들게 오전 업무를 마치고 쉬는 틈을 이용해 ‘멍을 때려보자’는 생각에서다.
‘도시놀이 개발자’라고 소개한 이들은 실명 밝히기를 거부했다. 웁쓰양은 놀랄 만한 작품을 해 보자는 뜻에서 감탄사인 ‘웁쓰’를 이름 대신 썼다. 저감독은 성씨가 조씨인데 보조라는 의미의 ‘조감독’으로 불리는 게 싫어 ‘저감독’으로 정했다. 팀명 ‘전기호’도 즉석에서 작명했는데, 서울광장에서 대회를 열 수 있도록 허가해 준 시청 담당공무원의 이름이라고 한다. 허가를 받을 수 있을 지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허가해 준 게 고마워서였다. 영문으로는 ‘전기’와 ‘호’를 나눠 ‘Electronic Ship(號)’이라고 표기했다.
“대회, 이름 모두 즉흥성을 강조했습니다.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면 이런저런 현실에 부딪쳐 못하기 마련이거든요.”
사실 멍 때리기 대회는 한달 전부터 SNS 상에서는 핫이슈로 떠올랐던 대회다. 신청자가 150명 이상 몰려 경쟁률이 3대1이 넘었다. 내년 2회 대회를 계획 중인데, 참가자들도 늘리고 다른 대도시에서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대회는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협찬을 거절하고 웁쓰양과 저감독이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저감독은 “오프라인 현장에서도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 줄 몰랐다”며 “앞으로도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신선한 도시 놀이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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