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시작된 홍콩 민주화 시위가 만 한 달을 맞아 방향성을 잃은 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시위 초기 한때 수십만명이 운집하며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후 중국 내 최대 정치적 항명으로 주목을 받았던 홍콩 민주화 시위는 결국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당초 지도부가 없는 시위로 눈길을 끌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거리를 점거한 학생과 시민의 힘은 놀라웠고 커 보였다. 그러나 지도부 부재는 시위대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시위를 효과적으로 이끌면서 정부와의 협상에서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는 데에도 한계로 작용했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 2일 정부와 시위대 간 대화를 제안했음에도 보름도 지난 21일에야 첫 대화가 이뤄진 것도 홍콩 정부의 소극적 자세와 함께 시위대 내부가 의견을 조율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도부가 없자 전략도 없었다. 당초 예상했던 기간을 넘겨 시위가 장기화하는 데도 시위 방식에 대한 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도심 거리를 한달 이나 점거한 채 무조건 정부가 요구 사항을 받아들일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시위 방식은 결국 무리를 낳았고 참여자의 이탈로 이어졌다. 시위대 부재는 지난 21일 홍콩 정부와 학생 대표와의 대화에서 “홍콩의 민심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치 개혁을 논의할 틀도 구축하겠다”고 제안한 것을 수용할 지를 놓고 벌이기로 했던 찬반투표까지 취소되는 결과를 빚었다.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친중국 단체의 역공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홍콩 민주화 시위를 공식 비판한 지난 2일부터 시위 현장에선 주민 및 친중국 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등장,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였다. 이후‘시위 중단 요구’ 서명 운동까지 일어나 65만여명이 서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고, 25일에는 시위대의 노란 리본에 대항해 파란 리본을 단‘시위 반대 시위’까지 열렸다. 정부측은 민주화 시위의 외세 개입 의혹까지 제기하며 시위 순수성을 흠집내고 있다. 중국 관찰자망(觀察者網)은 27일 민주화 시위 주도자 16명이 홍콩 중문대 홍콩미국센터로부터 최신 아이폰6를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이들이 반드시 해당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정보를 보내란 요청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홍콩 문회보(文匯報) 등 일부 친중 매체들은 홍콩 주재 총영사관이 이 기구를 후원하고 있고 미국 정보요원 출신 인사가 센테의 주임을 맡고 있다는 의혹도 내놨다.
그러나 시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 지도 알 수 없다. 학생 대표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거리 점거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들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사실상 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친 친중국 애국 인사로 제한한 중국 중앙 정부 결정을 철회하고 시민들이 추천하는 누구라도 입후보할 수 있는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고 있다. 시위는 진행형이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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