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과제 핑계 보고서 공개도 소극적
고리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 갑상선암 발병에 원전 측의 책임을 인정한 최근 부산지방법원 판결의 근거는 서울대 의학연구원 역학조사 보고서였다. 그런데 한국수력원자력이 이 보고서를 놓고 부산지법과 정반대 해석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23일 “서울대 연구에서 원전 주변 갑상선암 발생이 여성에게만 많았고, 거주기간과 비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사선 영향과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앞서 17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최호식 부장판사)는 “원전 주변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이 원전과 먼 지역보다 많다는 보고서에 근거해 원고(고리 원전 인근 주민)가 방사선의 영향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한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해당 보고서는 안윤옥 서울대 명예교수가 옛 교육과학기술부 지원을 받아 원전 4곳(고리 영광 울진 월성)에서 ▦5㎞ 이내 ▦5~30㎞ ▦30㎞ 이상 떨어진 지역에 살면서 암이 없던 주민 약 3만5,000명을 20년간 추적관찰해 방사선에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진 갑상선암과 위암, 유방암, 대장암 등 7가지 암의 발병 추이를 확인한 연구결과다. 30㎞ 이상 떨어진 지역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을 1이라고 하면 5~30㎞ 거주 여성은 1.8, 5㎞ 이내는 2.5로 높아졌다. 안 교수는 “암 발생의 지역 간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부산지법은 "원고가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보이고, 이 외에 뚜렷한 발병 요인이 없다”는 점을 들어 암 발병과 원전 간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안 교수는 한편 “통계적 유의성이 항상 인과관계의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단서조항을 남겼다. “원전 인근 갑상선암 발병률이 높은 이유가 방사선 때문이라고 확실히 결론 내리려면 ▦남성 발병률 ▦거주기간에 따른 발병률 ▦다른 암 발병률 등을 면밀하게 재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바로 이 부분을 들어 항소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로 인해 원전이 암발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한다. 원전과 암발생이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할 당위성이 확보됐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또 원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보고서의 의미를 정확히 알리고 각계 의견을 수렴해 후속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국책보안과제’라는 이유로 보고서 원문 공개에 소극적이다. “국가 과학기술 기밀 유지에 필요한 내용이라 직접 공개는 곤란한데, 국회도서관을 통해선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2012년 ‘대한의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해 이미 국제학계에도 알려진 내용”이라며 “공개를 꺼릴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