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ㆍ중환자실 환자 중심 개선, 암ㆍ심장뇌혈관 특성화 진료 도입
2020년까지 진료ㆍ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ㆍ최초 20가지 육성 목표
대형 병원 응급실에는 하루 평균 200~300명의 환자가 몰리는 탓에 장터를 방불케 한다. 고성이 오가고 혼잡한 응급실에서 기다리지 않고 의사와 간호사로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기는 우물에서 숭늉 찾기나 다름없다. 심지어 자리가 없어 응급실 바깥에 야전침대에 누워 대기해도 감지덕지할 정도다.
그런데 응급실이 호텔처럼 쾌적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 시작은 삼성서울병원에서다. 지난해 100억 원을 들여 응급실 인프라와 시스템을 대폭 개선했다. 가용 면적도 2배나 넓혔다. 동시에 환자 별로 증세에 따라 진료구역을 세분화했다. 지금까지 국내 병원에선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응급실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개원 20주년(11월 9일)을 눈 앞에 둔 삼성서울병원의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사령탑 송재훈(56) 삼성서울병원 원장을 만났다. 한 눈에 봐도 호남형인 송 원장은 다부진 목소리로 삼성서울병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삼성서울병원은 그 동안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고도의 압축성장을 일궈낸,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대전제 하에 의료 서비스를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는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창조하고 있지요.”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11월 9일 개원하면서 다른 일반 서비스 분야처럼 환자에게 ‘고객’대하듯 친절하고, 환자가 필요로 하는 편의를 먼저 제공하면서 환자를 병원의 중심에 옮겨 놓았다. 영원한 갑(甲)이었던 병원이 ‘환자가 병원의 주인’이라며 스스로 을(乙)을 자처한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백악관이 지정한 환태평양 지역 공식 후송병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국가고객만족도 조사(NCSI) 결과, 1998~2012년 총 15회 가운데 1위를 13회 차지할 정도로 환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환자 행복’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20년 전 내걸었던 모토인 ‘환자중심병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송 원장은 2012년 3월 취임한 직후 ‘환자행복을 위한 의료혁신’을 비전으로 삼고 202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병원의 전 임직원이 똘똘 뭉쳐 환자를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장을 취임한 뒤 지난 3여년 동안 이를 위해 기초체력을 다져왔다면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혁신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기대합니다.”
삼성서울병원의 비전은 ‘해피노베이션(Happinovation)’이란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해피노베이션은 환자에게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고 진료과정의 불편함을 없애 치료과정과 결과가 모두 만족스럽고, 최종적으로 환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체의 활동을 말한다. 진료, 연구, 사회공헌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 삼성서울병원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송 원장은 “환자중심의 진료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특성화 진료체계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은 2013년 암센터를 암병원으로 승격한 데 이어 올해에는 심장뇌혈관병원을 출범했다. 또 장기이식센터, 뇌신경센터 등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특성화센터 중심 체계도 본격 가동하고 있다. 외과는 외과까리, 내과는 내과끼리 진료과를 중심으로 마치 ‘조직’처럼 뭉치는 것이 국내 의료계의 풍토인데 진료과 구분없이 진료시스템을 센터화한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런 센터 체제로 움직인다. 의료계에서는 ‘쿠데타’적인 일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또 다른 예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혁신이다. 국내 최초로 중환자의학과를 세우고 중환자의학 전문의가 중환자실을 지키고 있다.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라는 두 곳에 삼성서울병원은 환자를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대한민국 최상위 의료기관으로서, 중증질환 중심의 병원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국가 의료체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송 원장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미래를 향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송 원장은 “2020년까지 진료와 연구 두 분야에서 세계 최고 또는 세계 최초 분야 20가지를 육성하겠다”고 했다. 벌써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자랑하는 ‘아바타 시스템’은 유전체 의학의 꽃을 피울 차세대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아바타 시스템은 내게 걸맞은 치료가 무엇인지 미리 쌓아둔 데이터 등을 통해 확인, 정밀타격방식으로 치료법을 찾는 기술이다. 송 원장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여기에 관심을 나타내며 국내 의학 사상 처음으로 연구모델을 포함한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태풍 같은 변화가 일고 있지만 병원 분위기는 태풍의 눈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평온하다. 송 원장이 현장 소통을 중시하면서 열린 경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철이 바뀌거나 병원에 굵직굵직한 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직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며 이해를 구한다. 분기마다 전 직원 앞에서 직접 설명회도 연다. 직원들과 뮤지컬을 관람하거나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서 소통을 길을 넓히고 있다. 덕분에 7,500여 임직원들은 해피노베이션의 비전에 공감하고 있다.
송 원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할 때 지면에 꼭 반영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병원은 환자 행복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은 또 한번 의료의 새 역사를 쓸 것을 확신합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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