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의 한 시장에서 1996년부터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던 박모(50)씨는 지난해 10월 남편의 승용차 안에서 수상한 녹음기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튼 녹음기에선 남편이 의문의 여성과 가진 낯 뜨거운 불륜 현장이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박씨는 그대로 혼절해 응급실에 실려갔다.
정신을 차린 박씨는 끔찍했지만 녹음기를 다시 틀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공 여성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도 상대는 박씨 가게 바로 옆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던 동료 상인 김모(49)씨. 박씨는 김씨네 가족과 18년 동안 수 차례 가족여행도 함께 가는 등 한 식구처럼 지내왔다. 절친했던 친구가 남편과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격분했다.
남편과 친구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박씨는 김씨에게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씨는 박씨에게 수 차례 용서를 구했고, 지난해 10월 말에는 돈으로 사죄하겠다며 박씨에게 1억2,000만원짜리 수표를 건넸다.
그러나 김씨의 가정은 결국 파탄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초 박씨가 김씨의 남편에게 전화해 외도 사실을 알린 것. 그 때부터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남편이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자 김씨는 박씨에게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가 간통죄로 김씨를 고소하자 김씨는 공갈죄 고소로 맞섰다. 분을 못 이긴 박씨가 올해 2월 시장 상인들에게 김씨의 불륜 사실을 폭로한 것에는 명예훼손 고소로 대응했다.
법원은 박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 동부지법 형사3단독 곽윤경 판사는 박씨의 공갈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공갈죄는 김씨가 박씨에게 먼저 돈으로 보상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곽 판사는 판단했다. 또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박씨의 남편이 김씨와 10년간 불륜을 저질렀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박씨가 상인들에게 하소연한 것이지 전단지를 돌리거나 소란을 피우는 등 적극적 행위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참작돼 선고를 유예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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