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명동 사채왕’ 최모씨에게서 수억 원을 받은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이 제보 내용에 모두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해당 판사의 금융계좌 추적과 주변인 조사 등을 통해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증거와 정황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조만간 이 판사를 소환해 조사한 뒤 사법처리하기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지법 A판사의 금품수수 의혹은 지난 4월 한국일보의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A판사가 친척의 소개로 알게 된 동향 출신 최씨에게서 2008~2009년 총 6억여원을 받아 전세자금 등으로 썼고 최씨가 연루된 사건의 수사기록 검토 등 도움을 줬다는 내용이다. 최씨는 현재 공갈과 협박, 마약, 탈세 등 20여가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A판사는 “최씨를 알고 지내긴 했으나 금품을 받은 적은 없다”며 “전세자금은 지인에게 빌렸다가 갚았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그러나 앞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1년 가까이 내사를 벌여 A판사의 혐의를 상당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현직 판사가 ‘떡값’ 수준을 넘는 거액을, 그것도 숱한 범죄에 연루된 사채업자한테서 받은 의혹이 제기된 것은 전례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법원의 대처는 안이하기 짝이 없었다. A판사의 소명만 접수하고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언하는가 하면, 금품 수수와 별개로 법관 윤리에 저촉될 수 있는 범죄 혐의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도 이렇다 할 조사 없이 넘겼다. 법원 내부 전산망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1심 판결을 비판한 같은 수원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법관윤리강령 위반을 이유로 발 빠르게 징계에 나선 것과는 뚜렷이 대조된다.
검찰도 바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사건을 넘겼으나 한동안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검찰 수사관 서너 명의 금품수수 의혹이 더해지고 일부 검사의 연루설까지 흘러나오자 경찰의 내사 움직임을 주시하며 수사 범위를 저울질하는 모양새였다. 뒤늦게나마 검찰이 적극적 수사에 나섰다니 다행스럽다. 항간에는 이 사건이 법원과 검찰, 경찰 등을 아우르는 초대형 ‘법조 비리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불필요한 의혹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수사를 서둘러 관련자들의 혐의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검찰의 소환 조사가 현실화하면 A판사의 재판업무 정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의 전형으로 지적돼온 의원면직 등의 편법을 동원할 경우 이미 추락한 신뢰를 회복할 길은 요원하다. 금품수수 혐의가 최종 확인될 경우 A판사는 물론 제기된 의혹을 덮기에 급급했던 법원 고위 관계자들도 각각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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