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저급탄
고급탄 비해 수분 많아 발열량 떨어져
기름에 튀기고 밀폐공간서 찌는 등 경제성 높이는 신기술 경쟁 치열
국내 유일 기술 '하이브리드 석탄'
사탕수수 원액ㆍ당밀 등 투입, 수분 줄고 바이오매스 농도 높아져
원자력에 대한 불신과 유가 불안정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업계가 다시 석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석탄을 한물간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국내외 에너지업계와 과학자들은 석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다. 기대를 모았던 신재생에너지 상용화가 주춤한 상황에서 신기술에 힘입은 석탄의 변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비효율에 화재 우려도
요즘은 저등급 석탄(저급탄)이 주목 받는다. 기존 발전용 고급탄이 점점 줄어들면서 가격이 상승하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매장량이 많은 저급탄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저급탄과 고급탄의 차이는 수분 함량이다. 석탄은 생물 퇴적물이 오랜 시간 땅속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탄화해 만들어지는데, 탄화가 잘 될수록 수분이 적고 탄소가 많아진다. 수분 함량이 5%가 안 되는 고급탄에 비해 저급탄은 탄화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아 30% 안팎이 수분이다.
수분이 많으면 잘 타지 않는다. 저급탄의 발열량은 고급탄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화력발전소는 대부분 1㎏당 열량이 6,080㎉는 나오는 석탄을 연료로 쓰도록 설계돼 있다. 발열량이 5,500㎉/㎏보다 내려가면 같은 출력을 내기 위해 더 많은 석탄이 필요하다. 그만큼 연소가스 배출량이 늘기 때문에 저급탄을 그대로 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다. 해외 채굴한 저급탄을 현지에서 건조해 들여온다 해도 운송하는 동안 저급탄이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자연적으로 더 빨아들이는데, 이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운송 도중 자칫 불이 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효율과 안전성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느냐가 저급탄 활용의 관건이다.
튀기고 찌고 코팅하고
우리나라처럼 자원빈국 처지인 일본은 일찌감치 저급탄 품질 향상에 열을 올렸다. 수분을 줄이고 발열량을 높이려면 석탄 속 친수성 부분을 소수성으로 바꾸면 된다. 일본에선 저급탄에 높은 열과 압력을 가해 기름을 입혔다. 쉽게 말해 석탄을 기름에 튀긴 셈이다. 데모 플랜트까지 만들었지만, 기름 값을 감당할 수 없어 상용화가 중단됐다.
요즘 일본은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고온고압 상태의 밀폐된 공간에 석탄을 넣어 내부 수분을 증발시키는 것이다. 압력밥솥으로 석탄을 찐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수분이 날아가면 석탄 속에 들어 있는 타르가 점점 기공을 막아 공기 중에서도 수분이 재흡수되지 않는 상태로 변한다. 하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한계는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더 앞선 기술로 저급탄 상용화를 타진 중이다. 한국동서발전은 저급탄이 많은 인도네시아에 풍부한 싼 야자유(팜오일)를 석탄에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동서발전 남궁찬 동반성장센터 차장은 “4,200㎉ 저급탄의 열량을 6,500㎉까지 높이는데 성공했다”며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열량과 야자유 양을 조절해 2017년까지 하루 5,000톤 규모의 고품위 저급탄 생산시설을 인도네시아에 준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생물연료 섞은 하이브리드 석탄
저급탄 품질 향상 경쟁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주요 석탄 수출국이던 중국이 2008년 이후 내부 수요가 급증해 수입국으로 돌아서면서 고급탄 고갈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요 수출국 호주에서 2012년 대규모 홍수가 난 뒤에는 고급탄 가격이 크게 뛰기도 했다. 저급탄 활용 기술을 먼저 상용화하는 나라가 호주와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산재해 있는 저급탄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국내 발전설비에 쓰이는 에너지원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28%로 원자력, 천연가스와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수입한 석탄은 총 1억2,000만톤 가량. 그 중 7,000만~8,000만톤이 발전용이다. 발전용 석탄 가운데 저급탄은 3,000만톤 정도다. 고급탄 고갈 속도로 봐선 저급탄 수입량이 점점 늘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국내로 오는 저급탄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산. 최근 인도네시아는 저급탄의 가치를 인지하고 직수출을 금지하는 정책을 조만간 추진할 태세다. 현지에서 고품질화 처리를 하지 않으면 수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자국에 저급탄 활용 설비를 짓도록 유도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저급탄 품질 향상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마침 국내 과학자들의 색다른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생물연료(바이오매스)를 섞어 이른바 ‘하이브리드 석탄’을 만든 것이다. 열대지방에서 사탕수수 원액이나 설탕을 만들고 남은 당밀을 가져다 석탄의 친수성 부분에 넣으면 녹으면서 농도 차이 때문에 빨려 들어간다. 수분이 줄어드는 대신 바이오매스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 열을 가하면 바이오매스가 스스로 탄화한다. 설탕을 데웠을 때 갈색으로 변하면서 굳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석탄을 이렇게 ‘탄소 코팅’ 하면 발열량이 늘고 수분 재흡수도 막을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최영찬 청정연료연구실 책임연구원은 “미분탄(가루처럼 분쇄한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500메가와트(MW)를 발전하려면 인도네시아 저급탄을 시간당 296톤 공급해야 하지만, 하이브리드 석탄은 197톤만 넣으면 된다”며 “발전 효율이 향상될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도 30% 이상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하이브리드 석탄 기술은 아직 우리나라만 갖고 있다. 에기연은 한국중부발전과, 에너지기업 메탈켓코리아와 함께 파일럿 플랜트 실험을 내년 9월까지 완료하고, 이후 인도네시아에 실증 플랜트를 지을 계획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