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특별한 만추의 무대 ‘정견(正見ㆍRight View)’을 사람들은 심안(心眼)으로 들었다. 하늘은 삽상했고 지리산 자락의 송뢰는 번뇌를 일거에 쓸어 내렸다. 25일 전남 구례군 화엄사 대웅전 앞뜰의 ‘화엄음악제 2014’에 모인 구경꾼 1,500여명은 행복한 포만감에 젖었다. 1시간 30분의 무대 내내 쏟아진 뜨거운 박수는 범종각 종소리의 긴 여운과 함께 겨우 멎었다.
태초의 소리 같은 컴퓨터 음악이 스피커로 울려 퍼지고, 예불을 마친 스님들이 좌정하면서 무대가 시작됐다. 이미 여덟 차례나 치르면서 입소문이 날대로 난 이 푸진 음악 마당을 각처의 밝은 귀들이 놓칠 리 없다. 월드뮤직 그룹 공명, 터키 악기 사즈의 명인 주말리 불둑의 연주를 코앞에서 감상하는 자리다.
생황 주자 김효영씨는 변함없는 진보성으로 국악의 미래가 무궁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파리 공연을 마치고 온 그는 그곳의 음악가들과 이뤄낸 즉흥 연주에 아직도 고무돼 있는 듯 했다. 세계적 생황 주자인 중국인 우웨이 등과 친교를 맺은 그녀는 이날 ‘생(笙)’ 등에서 현란한 선율로 즉흥 연주력을 입증했다. 들숨ㆍ날숨 연주, 혀놀림 등 10가지 기교로 구사되는 생황이 징, 신시사이저 등의 협연 악기들과 얽혀 들어갔다. 2010년 곡 ‘눈물’은 세월호 사건 뒤 부쩍 주목 받은 곡으로 이 날 객석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가수 한영애씨는 ‘누구없소’ ’조율’ 등 대표곡을 불렀다. 한씨는 노래를 한 뒤 화엄사 주지 영관 스님과 인사했다. 스님온 “1990년대 중반에 테이프로 많이 들었는데 무섭게 생긴 분이 아주 멋있게 노래한다”며 “대중 가수의 카리스마가 칼칼하니 멋있었다”고 말했다. 원일 총감독은 “내년부터는 제가 나서 클래식도 참여시키고 행사도 며칠 동안 열 것”이라며 “좋은 음악, 진정성 있는 음악이라면 모두 환영한다”고 말했다.
24일에는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흥야라 밴드, 하프 주자 이기화 등이 출연한 가운데 선(禪)과 영성을 주제로 한 전야제가 열려 하루 뒤의 열기를 예고했다. 뽕짝과 정악을 무소불위로 넘나들던 임씨의 피아노 반주가 안착한 곳은 덩더꿍 장단의 찬불가였다. 간간이 범종 소리가 낮게 깔려 들었고 대웅전의 불상은 원융의 미소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구례=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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