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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ㆍ카페 같은 도서관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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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ㆍ카페 같은 도서관을 꿈꾼다

입력
2014.10.2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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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수 등 지음

사람의무늬 발행ㆍ304쪽ㆍ1만8,000원

박물관ㆍ미술관과 한 덩어리

장바구니 들고 책 쇼핑하고 가끔 디스코장으로도 변신

한국이 건축가 3명, 영국 네덜란드 정책 사례 중심

도서관의 바람직한 모델 탐색, 설계ㆍ디자인ㆍ경영까지 제언

한국에는 왜 이런 도서관이 없을까.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도서관을 가질 수 있을까. 신간 ‘슈퍼 라이브러리’가 소개하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도서관을 보면 부럽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인 건축가 3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도서관 정책과 사례를 중심으로 21세기 도서관의 바람직한 모델을 탐색한다. 공공 도서관을 통해 공공 건축과 공공 공간의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도서관이라는 문화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짚고, 도서관은 어디에 자리잡아야 하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말한다.

책 제목의 ‘슈퍼’는 ‘슈퍼마켓처럼 일상적인, (기능이)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특별하고 좋은, 그리고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서관을 바라며 붙인 것이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신승수 오즈 건축사무소 공동대표는 네덜란드 유학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틈 날 때마다 갔던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을 그리워하며 서문을 썼다. 그곳은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도시의 오아시스였다. 도시의 광장이면서 거실이자 발코니, 아이들의 놀이터, 새로운 경험을 접하는 도시의 관문 같은 공간이었다. 한국의 도서관은 영 딴판이다. 시험 공부하는 독서실, 책 빌리러 가끔 들르는 곳이다. 그게 안타까워 책을 썼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의 1층 로비.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의 1층 로비.
네덜란드 렐리스타트 공공도서관 입구. 슈퍼마켓을 연상시키는 책바구니가 방문객을 맞는다.
네덜란드 렐리스타트 공공도서관 입구. 슈퍼마켓을 연상시키는 책바구니가 방문객을 맞는다.
네덜란드 디오케이 중앙도서관의 아트리움 라운지. 전시와 공연이 수시로 열리고 때로는 디스코텍으로도 변하는 공간이다.
네덜란드 디오케이 중앙도서관의 아트리움 라운지. 전시와 공연이 수시로 열리고 때로는 디스코텍으로도 변하는 공간이다.
가정집 서재나 거실 분위기가 나는 암스테르담 도서관 내부 공간.
가정집 서재나 거실 분위기가 나는 암스테르담 도서관 내부 공간.

네덜란드의 공공 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이다. 박물관, 미술관, 아카이브센터가 도서관과 한 덩어리다. 내부를 백화점처럼 설계하기도 한다. 쇼핑하듯 둘러보면서 지식과 정보를 탐험하고 사람을 만나는 즐겁고 활기찬 공간이 도서관이다. 도시의 각종 문화시설과 동선을 연결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델프트의 디오케이(DOK)도서관은 네덜란드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도서관으로 꼽힌다. 문화광장을 중심으로 극장과 상업시설, 주택과 붙어 있는 이 도서관의 로비는 공연과 전시가 열리고 가끔 디스코장으로도 변한다. 책이 아니라 ‘사람이 컬렉션이다’는 모토 아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는 ‘즐거운 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식의 백화점’을 표방한 렐리스타트 공공도서관은 쇼핑몰에 들어가 있다. 입구에는 슈퍼마켓에서 보는 것 같은 책바구니가 있다. 조명과 표지판도 쇼핑몰에서 쓰는 것으로 했다. 서가 구성도 딱딱한 십진 분류 대신 스포츠, 취미생활, 예술, 신문잡지 등으로 구분해 친근감을 준다.

알메르 공공도서관. 쇼핑몰을 연상시키는 아트리움과 에스컬레이터, 디스플레이 방식이 인상적이다.
알메르 공공도서관. 쇼핑몰을 연상시키는 아트리움과 에스컬레이터, 디스플레이 방식이 인상적이다.
영국 페캄도서관의 원스탑 숍. 이민노동자와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주민의 취업이나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영국 페캄도서관의 원스탑 숍. 이민노동자와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 특성에 맞춰 주민의 취업이나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영국에서 공공 도서관은 토니 블레어 정부가 1997~98년 ‘새로운 도서관 운동’을 펼치면서부터 도시 재생의 핵심 시설이 됐다. 주민이 갈수록 줄고 슬럼으로 변해가는 지역을 살리는 데 공공 도서관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거실 같고 카페 같은 편안한 공간 설계가 특징이다. 도서관을 길거리 상점이나 슈퍼마켓 같은 일상 공간과 결합한 것도 특징이다.

런던의 ‘아이디어 스토어’는 아이디어 상점이라는 도서관 이름부터 흥미롭다. 장기 프로젝트로 2002년 가장 먼저 문을 연 ‘아이디어 스토어 보우’는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가니 도서관인 곳이다. 처음부터 상가의 일부처럼 보이게 설계했다. 기존 도서관을 증개축했는데 재개관 후 방문자 수가 3배나 증가했다.

페캄도서관에는 인근 주민을 위한 원스톱 숍이 있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이민자가 많이 사는 지역 특성에 맞춰 이들에게 생활지원 서비스를 하는 공간이다. 아프리카ㆍ카리브해 문학센터도 있다.

저자들이 영국과 네덜란드의 도서관을 주목한 것은 1990년대 들어 유럽 도서관들이 겪은 위기를 잘 넘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도서관 이용률이 크게 떨어지자 도서관 혁신론이 나왔다. 방향은 두 가지, 사용자 중심의 새로운 도서관 정책과 도서관 공간의 질적인 혁신으로 잡혔다.

두 나라의 사례를 살핀 끝에 이 책이 내린 결론은 도서관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공간을 기획하고 만드는 주역은 사서나 관료가 아니라 사용자다, 도서관이 자리잡을 곳은 관리가 편한 곳이 아니라 길모퉁이를 돌다가 마주치는 곳이라고 말한다.

건축가들이 쓴 책인 만큼 도서관 건축의 설계와 내부 공간 디자인 이야기가 많다. 말미에 좋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제안도 했다. ‘디자인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디자인 경영이란 기획, 발주, 설계, 시공, 유지 관리, 사후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전략을 세우고 이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는 전문가와 시민의 합의와 공유가 필수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좋은 도서관들은 건축가의 설계만으로 나온 게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조사와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서관을 설계하는 건축가뿐 아니라 도서관 이용자, 도서관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관과 정책 실무자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어떤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이냐는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늠하는 데 요긴할 것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사진 제공=출판사 사람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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