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 좋은 환경에서 키우라는 뜻의 속담이다. 그런데 말을 제주로 보내는 문제로 큰 분란이 났다. 제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10월28~11월3일)가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승마경기 장소인 제주대 승마장에 대해 대한체육회와 승마협회가 경기 불가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협회 측은 최근 500㎞나 떨어진 아시안게임 장소인 인천 드림파크 승마장으로 변경했고, 발끈한 제주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1일 국감에서 “협회 내부의 정치와도 관련 있지 않나 의구심이 든다”며 묵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 승마선수 50여명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제주대 승마장은 규사(석영모래)가 아니라 규정에 없는 해사(바닷모래)가 깔린 모양이다. 모래 입자가 굵어 점프 때 말이 미끄러져 발목 인대 부상 위험이 있고, 경기장 배수시설도 부실하다는 것이다. 말이 묵는 마방(馬房)도 마구간이 아니라 외양간이더라는 말도 나왔다. 몸값이 억대에 이르는 경기마나 선수 보호를 위해서도, 경기력을 고려해서도 사정에 따라 경기장 변경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시정할 수 있는 숱한 시간 동안 뭘 했길래, 대회를 코앞에 두고 경기장 문제가 불거졌느냐는 의문이 인다. 어느 경기장이라도 국제규격에 맞는 시설로 지어졌을 터인데,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주도가 경기장 건설 과정에 도내 경기단체는 물론 승마협회 자문을 제대로 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협회나 선수들이 구실을 만든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제주도는 협회의 협조를 얻어 착공했고, 경기 운영에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 제주도는 삼다도에 더해 말의 본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한라산 중턱에 국마(國馬)를 기르는 목장도 있었다. 조선 태종실록에 보면 제주도 안무사(按撫使)가 ‘땅이 따뜻하고 풀이 무성하여 산이 깊어도 호랑이가 없어 축산이 잘 번식한다’며 국마를 생식하는 걸 항규(恒規)로 삼아야 한다는 방책을 올렸다. 말에 얽힌 긴 역사로 보건대 다른 곳도 아닌 제주에서 이런 논란이 빚어진 것은 코미디다. 승마장을 짓는 데 70여억원을 들였다니 세금 낭비 규명 차원에서라도 진위가 밝혀져야겠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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