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파코 지음ㆍ전혜정 옮김
눌와 발행ㆍ184쪽ㆍ1만원

“아련한 안개 사이로 집들의 바다가 출렁이는 것을 보렴 / 지붕은 파도 / 그 바다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을 들으렴.”
프랑스의 문학가 테오필 고티에의 시 ‘노트르담’이다. 고티에는 파리의 아름다운 지붕 풍경을 ‘집들의 바다’라고 노래했다. 움직이는 건 안개였겠지만, 고티에의 눈길을 잡은 건 지붕의 향연, 그 아래 사는 생명들의 속삭거림이었다.
작가 쥘 상도 역시 바다의 이미지로 지붕을 그렸다. “오라스의 다락방을 곶으로 삼아 내려다보는 지붕의 바다”.
지붕이 늘 낭만적이기만 한가? 딱딱한 슬레이트, 인간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높이는 때로 죽음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서 주인공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는 지붕에서 굴러 떨어져 불구가 된다. 쿠포가 맞닥뜨리게 될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으로 졸라는 지붕을 차용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실제 졸라 역시 난방업자가 의도적으로 굴뚝의 도관을 막아 자신의 집에서 질식사했으니 말이다.
지붕은 안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머리 위에 지붕이 없다는 것만큼 불안한 일이 있을까. 내 정수리를 보호해줄 가림막, 눈비에도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는 터전을 지붕이 만들어준다. 건축에서도 지붕은 구도의 완성이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구엘 공원에 들어선 지붕들은 어떤가. 형형색색의 모자이크로 장식한 지붕, 생크림을 얹은 듯한 곡선의 모양은 보는 이를 신비의 나라로 인도한다. 근육인 듯, 뼈인 듯, 비늘인 듯 기존 지붕의 이미지를 뒤집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붕은 아직도 올려지고 있다.
지붕은 소통이기도 하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좋은 소식을 ‘지붕 위에서’ 전하라고 했다. 산타클로스는 지붕의 굴뚝을 타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온다. 방어의 기능인 폐쇄성과 소통의 특성인 개방성을 동시에 지녔다.
‘지붕’은 파리도시공학학사원 교수인 저자 티에리 파코가 들려주는 지붕 이야기다. 영화, 그림, 문학, 건축 속에 나타난 지붕을 두루 살핀다. 출판사 눌와가 펴내는 ‘건축을 읽는 눈’ 시리즈 세 번째다.

철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하늘로 이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지붕에 담겨 있다는 해석을 내린다. “집은 자족감으로 가득 차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돔형의 인큐베이터이지만, 지붕은 원소나 천사와 소통하고자 하는 제어할 수 없는 욕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아파트촌이 곳곳에 들어선 현대엔 지붕이 주는 생명의 기운도, 삶의 이야기도, 소통의 이미지도 느끼기 어려우니 안타깝다.
그래도 저자는 말한다. “지붕은 제각각 이야기를 갖고 있다. 독자들이 서둘러 각자의 지붕을 찾아가보길 바란다. 다락방에서 그 공간에 담긴 비밀스러운 사연을 공들여 들어보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이 책에 붙은 부제는 ‘우주의 문턱’이다. 우주와 나 사이에 지붕이 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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