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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김밥', 비싼 값만큼 진짜로 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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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김밥', 비싼 값만큼 진짜로 웰빙?

입력
2014.10.2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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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식재료 사용" 강조 불구 정확한 원산지 공개는 꺼려

햄ㆍ맛살ㆍ단무지 가공식품 여전

기름에 볶고 간 하는 조리법 인해 나트륨과 칼로리 수치 높아

소비자도 가격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건강 위해 꼼꼼히 따져 봐야

초등학교 4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 채문정(38)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김밥을 먹고 싶다고 졸라 동네에 있는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에서 아이와 함께 김밥을 먹었다. 과거에는 별 생각 없이 김밥 전문점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김밥 전문점들이 생겨 아이 건강을 위해 가격이 비싸도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을 이용한다.

직장 회식 때문에 토요일 오전까지 늦잠을 잔 직장인 정수민(30)씨는 토요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집 근처 프리미엄 김밥 전문집으로 향했다. 김밥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든 김밥을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섰다.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김밥을 구입한 정씨는 집에 돌아와 김밥을 먹으며 만족했다.

신선재료 앞세운 ‘프리미엄 김밥’ 열풍

국민 분식의 대명사였지만 그 동안 음식대접을 받지 못했던 김밥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품절음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김밥시장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프리미엄 김밥’. 강남과 동부이촌동 등 서울의 대표 부촌을 중심으로 문을 연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들이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실례로 학원가로 유명한 대치동에 위치한 ‘바르다김선생’, ‘고봉민김밥’ 등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의 경우 주말만 되면 김밥을 사려면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한다. 이들 김밥 전문점들의 김밥 한 줄 가격은 2,500~4,500원 정도. ‘김밥천국’ 등 기존 김밥 전문점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른 식재료 강조하지만 원산지 공개는 꺼려

프리미엄 김밥 전문점 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바르고, 좋고,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직장인 한끼 식사 값과 맞먹는 가격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르다김선생’, ‘고봉민김밥’, ‘김가네’, ‘로봇김밥’, ‘스쿨푸드’ 등 프리미엄 김밥업체에게 식재료 원산지 공개를 요청했지만 식재료 원산지를 정확히 공개한 업체는 많지 않았다. 식재료 원산지를 공개한 ‘바르다김선생’은 “표백제, 합성보존제, 빙초산, 삭카린나트륨, L-글루타민산나트륨 등 5무 백단무지와 해남산 원초만을 엄선해 두 번 구운 김, HACCP인증 청정농장의 건강한 닭이 낳은 좋은 계란, 무기질 함량이 높은 100% 국내산 남해안 간척지 쌀, 53년 전통의 찜누름 방식의 최상급 통 참깨를 짜내 만든 참기름, 고급 저염 햄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사 홍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식재료 원산지를 공개한 기업도 있다. 김가네는 “시금치는 해남지역의 황토시금치 20~30톤을 업체에서 공급받고 있고 단무지용 무는 산전무 업체와 총 10만평 재배 중 6만평 가량 연간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스쿨푸드도 “호남평야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신동진 쌀과 스페인산 오징어 먹물을 사용한다”고 했다. 김경민 배화여대 식품영양과 교수는 이에 대해 “바르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겠다는 것만으로도 김밥시장이 업그레이드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식재료 원산지를 정확히 밝혀야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재료 좋아도 열량, 칼로리 문제서 자유롭지 못해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해도 모든 재료를 기름으로 볶고, 간을 할 수밖에 없는 김밥 속성 때문에 ‘웰빙’‘건강’을 강조한 홍보는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이들 재료를 기름에 볶고 간을 하기 때문에 칼로리와 나트륨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단무지, 햄, 맛살 등 가공식품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식재료가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것 외에는 건강이나 웰빙을 강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김밥 한 줄의 나트륨 함유량은 얼마나 될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영양성분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일반김밥의 나트륨 함유량은 833.29㎎이다. 소고기김밥은 1,061.19㎎, 김치김밥은 1,146.64㎎에 달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고 있는 2,000㎎의 절반인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밥을 먹을 때 함께 먹는 것이 라면인데 라면 한 개에는 평균 1,400~2,000㎎의 나트륨이 들어있다. 간편히 한끼 식사를 하려다 한번에 1일 권장 나트륨 량을 초과할 수 있다. 나트륨을 과잉 섭취하면 골다공증,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위암, 만성신부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일부 프리미엄 김밥업체에서 좋은 참기름을 쓰고 있다고 강조하는데 아무리 좋은 참기름을 쓴다 해도 실온에서 계속 사용하면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참기름을 솔에 묻혀 김밥에 두르는데 업체들이 매일매일 솔의 위생상태를 점검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한 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프리미엄 김밥의 기준이 가격이 될 순 없다”며 “최근 유행하고 있는 프리미엄 김밥을 살펴보면 기존 김밥과 달리 밥의 양은 줄이고 시금치, 오이, 달걀, 당근 등 식재료를 많이 써 크기를 키워 식감을 높였지만 햄과 단무지들과 함께 볶고, 조린 이들 재료가 많이 들어감에 따라 칼로리와 나트륨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좋은 식재료를 내세운 프리미엄 김밥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식재료의 원산지 공개가 잘 이뤄지지 않는 등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김밥 포장용기가 가득 쌓인 서울시내 한 김밥 브랜드 매장의 입구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최근 좋은 식재료를 내세운 프리미엄 김밥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식재료의 원산지 공개가 잘 이뤄지지 않는 등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김밥 포장용기가 가득 쌓인 서울시내 한 김밥 브랜드 매장의 입구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제대로 된 프리미엄 메뉴 개발해 ‘한식 세계화’ 기여해야

걸음마 단계인 프리미엄 김밥시장을 제대로 육성해 한식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 교수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프리미엄 김밥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정말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고 여기에 칼로리와 나트륨을 줄인 메뉴가 개발되면 프리미엄 김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석중 국립중앙의료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프리미엄 김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좋은 식재료와 함께 칼로리와 염분 등을 낮춘 메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도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 김밥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좋지만 건강ㆍ영양학적으로 발전된 프리미엄 김밥이 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칼로리와 나트륨 섭취를 삼갈 수 있는 김밥메뉴가 개발돼야 할 것”이라며 “가격만 올리지 말고 소비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업체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업체뿐 아니라 웰빙, 건강, 힐링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좋다고 여기는 소비자들도 문제”라며 “우리 국민들이 건강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데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우린 언제부터 김을 먹었을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음식 100가지’(현암사 발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김을 많이 먹는다. 다른 민족에게는 희귀한 식품일 수밖에 없는 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안지방에 있던 한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김을 반찬으로 제공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전범재판이 열렸을 때 미군 측에서 포로 학대의 증거로 김을 강제로 먹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길동전’ 저자인 허균이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ㆍ고깃간 문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씹는다는 뜻)’에서는 김에 대해 ‘김은 전라도 산물로 해의(海衣)라고 불렸는데 광양군에서는 400년 전부터 ‘토산’이라 했다고 저술했다. 허균은 책에서 “함평, 나주, 무안의 김이 엿처럼 달다”고 평가했다.

김 양식에 대한 기원도 다양하다. 200~300년 전 경남 하동의 한 노파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따고 있는데 김이 많이 붙은 나무토막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뜯어먹어 보니 맛이 좋아 그 후 대나무를 물속에 세워 김 양식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지금처럼 김발을 이용해 길고 둥글게 만 김밥이 유행한 것은 1960~70년대로 봄, 가을 소풍에 없어서는 안 될 특식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정에서 만들었던 김밥이 상품으로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서울 종로 혜화동에서 문을 연 ‘종로김밥’에서 김치, 치즈 등 속 재료를 깻잎에 한번 싸서 속으로 넣고 밥의 분량을 넉넉하게 잡아 크게 만든 김밥이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맨밥을 손가락 굵기만 하게 말아낸 꼬마김밥에 반찬 대신 갑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얹어먹는 별미로 유명한 충무김밥은 해안지방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여객선을 많이 이용했던 1980년대 초반 유명세를 떨쳤다. 식품영양학계에서는 “많은 국민이 김밥을 즐기고 있는 만큼 한국 고유의 패스트푸드인 김밥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김밥의 세계화를 주문하고 있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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