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총장의 연임을 둘러싸고 포스텍(포항공대)의 내홍이 심상찮다. 평교수 교직원 학부생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 80% 이상이 김 총장 연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평교수회 소속 교수들은 지난 6일부터 학내 학생회관에서 김 총장 연임을 반대하는 단식농성에 이어 22일부터 무기한 릴레이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장에는 ‘결사반대’라는, 국내 최고 이공계대학과 어울리지 않는 문구도 등장했다.
김 총장은 포스텍 내 다른 교수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 다수는 이런 ‘유능한’ 총장을 반대하고 있다. 서의호 평교수회 부의장 등이 연임반대 단식투쟁을 시작할 때 내세운 ‘구성원들과의 대화 부족’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부 포스텍 교수들의 텃세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갈수록 그것만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전형적인 미국식 사고로 한국적 특성을 무시한 채 리더십과 소통부재로 포스텍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열린 토론회 등에서는 전임 총장이 약속한 교수 채용건, 청소용역직원 임금 삭감건, 미래IT융합연구원장 임명건 등이 쏟아졌다. 이면에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김 총장 재임 후 대형 연구프로젝트나 발전기금 유치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날로 떨어지는 포스텍 위상 제고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대한 실망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유능’해도 정상적인 총장 업무 수행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연히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이 나서야 하는 대목인데, 정준양 법인 이사장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 이사장은 서울로 찾아온 서의호 부의장에게 학내의 김 총장 연임 반대 기류에 대해 일부 김 총장 불만세력이 여론을 주도했기 때문으로 직접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학교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인 만큼 모든 이사가 참여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겠다”며 총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를 16일에서 23일로 연기한 데 이어 11월 이후로 또다시 미루겠다는 생각만 밝히고 자리를 떴다. 지난 2011년 임명된 김용민 총장의 임기는 4년으로, 포스텍은 관행적으로 임기만료 1년 전쯤에 차기 총장을 선임해 오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는 악화하고 있다. 자칫 유능한 학자 1명을 재기불능의 만신창이로 만들지도 모른다. 명예롭게 남은 임기를 마칠 기회마저 빼앗지 않을까 우려된다.
공교롭게도 정 이사장은 2009년 3월부터 올 2월까지 포스코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17%였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4.8%까지 떨어졌다. 9조원이었던 포스코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는 3월말 현재 40조5,800억원으로 늘었다. 업계에서 정 이사장이 ‘포스코의 잃어버린 5년’에 이어 ‘포스텍까지 망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 이사장 입장에선 김 총장이 아까울지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학이나 학내구성원, 김 총장은 물론 정 이사장 본인을 위해서라도.
김정혜기자 k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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