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주민 2만9000명 서명 법무부 유치 결정 근거로 내세워
군·유치위도 "일부 대리서명" 시인, 반대 측 "무효화" … 주민갈등 격화
경남 거창군 ‘법조타운’ 건립을 두고 주민간 찬반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군이 법조타운 유치 명분으로 내세운 주민 찬성 서명의 과반수가 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유치를 결정한 주요 근거가 날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건립 추진의 명분이 사라진 채 주민 갈등이 격화하는 등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한국일보가 ‘거창 법조타운 유치 거창군민 서명부’ 전체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누가 봐도 동일한 글씨체로 주소 연락처 서명 등을 적은 부분이 전체 서명의 절반을 넘었다. 서명부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2만9,000여명으로 전체 거창군민의 47%에 달한다. 서명은 2011년 2월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 위주로 결성된 ‘법조타운 유치위원회’ 소속 500여명이 같은 달 22일부터 11일간 거창 중심가와 각 읍ㆍ면 등을 방문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창군은 같은 해 3월 9일 이 서명부를 법무부와 대법원에 제출했고, 넉 달 후 법무부는 거창읍 가지리 성산마을에 20만418㎡ 규모의 법조타운 건설을 확정했다. 이에 앞서 법무부는 현장 답사보고서를 통해 ‘토지ㆍ건물 보상비 등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교정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현실에서 군민 3만여명이 찬성한 것 등을 고려해 거창 성산마을에 교정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거창 학부모들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학교 앞 교도소 반대 범거창군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서명부가 날조된 것이므로 법조타운 유치는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범대위는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교도소인데도 거창군은 법조타운이라는 미사여구로 주민들을 속였다”며 “서명의 상당수는 이장 등이 주민 몰래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창군과 유치위원회는 대리서명을 시인했다. 서명을 받았던 한 유치위원은 “대리서명이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며 “지인들 것을 대신 해준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군 관계자도 “이장들이 협조하는 차원에서 대신 작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결정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서명부가 날조됐다는 것을 확인하기 어렵다. 거창교도소 신축을 둘러싼 주민 갈등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거창군민 263명은 최근 경남경찰청에 이홍기 군수 등 관계 공무원 4명과 유치위원회 간부 4명, 서명을 도용한 읍ㆍ면장 12명을 공문서 위ㆍ변조 혐의로 고발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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