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길지 않은 자동차 역사를 가졌음에도 자동차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국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자동차 50년사’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7,326대에 불과하던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3년 1,950만대로 무려 2,6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오는 12월 말이면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17만 6,000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2.59명당 차량 1대를 소지하고 있는 수치로 전 세계 자동차 등록현황 순위 20위권에 해당한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의 눈부신 성장은 우리나라를 자연스럽게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교통안전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첫째, 사고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를 가중시키는 뺑소니 자동차사고, 둘째, 법에서 정한 의무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차량을 운행하는 무보험 차량 사고, 셋째,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전불감 태도로 일관한 음주운전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함께 발생하게 된 위 세 가지 문제들은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피해자 가족에게 생계 곤란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어 교통사고의 3대 악(惡)이라 일컬을 만큼 심각하다.
이중 뺑소니ㆍ무보험 자동차 사고는 가해자를 찾기 어렵거나, 책임을 묻기 힘든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뺑소니ㆍ무보험 자동차 사고 피해자 및 피해자가족의 최소한의 구제를 위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이하 정부보장사업)’이라는 사회보장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뺑소니ㆍ무보험 자동차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피해자 및 피해자가족이 다른 방법으로는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 정부가 신속하게 피해자가 치료받고, 경제적ㆍ정신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동차 책임보험과 동일한 한도 내에서 보상하는 사회보장제도다.
2013년 한해 동안 뺑소니ㆍ무보험차 피해자 6,200여명에게 약 270억원을 지급해 사회 안전망 구축에 큰 역할을 해 왔다. 보다 많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뺑소니ㆍ무보험 자동차사고 피해를 입고도 정부보장사업제도를 알지 못해 보상 받지 못한 피해자에게 보장사업 안내문 우편발송과 유선통화 등의 ‘찾아가는 보상서비스’를 2012년 9월부터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해자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 피해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데다 보상한도도 실제 발생하는 손해액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자동차 책임보험(대인배상Ⅰ)과 정부보장사업 보상한도를 상향조정하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주요 개정내용으로는 뺑소니ㆍ무보험 차량 피해자의 사망ㆍ후유장애 보상액을 최고 1억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확대하고, 부상한도도 상해등급 1급 기준 최고 2,0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확대 보상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 보상이 현실화돼 피해자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명을 돌파해 8년째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20-50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성장과는 달리 교통문화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2013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뺑소니 교통사고는 전체 교통사고 21만5,354건 중 4.5%라는 높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곧 선진국에 걸맞은 국민 기초질서 의식 수준은 상당히 부족함을 의미한다.
정부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과 함께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상호 배려심, 수준 높은 책임감 등 기본적인 교통질서 의식이 바탕이 된다면 내실을 갖춘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권석창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기획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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