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구의 일부는 전근대다. 배울 기회가 한쪽에 쏠려 있다. 진보의 비도 사막엔 내리지 않는다. 박탈이 부조리하단 생각조차 여아는 키우지 못한다. 대개 결핍은 쟁취로 해소된다.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17세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선정됐다. 여자도 학교에 가게 해 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외침 때문에 등굣길 버스 안에서 탈레반 요원으로부터 머리에 총을 맞고 기사회생한 소녀다. (…)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있는 이사투 잘루는 내가 어린이재단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올해 14세 된 소녀다. (…) 이사투는 연필을 꼭꼭 눌러가면서 쓴 편지에서 이제 곧 2학기 기말고사가 있어서 준비 중이고, 다음달(4월) 첫째 주에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남학생들을 위한 교육보다 유익하다’라는 주제로 연극을 한다고 적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후원자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이 연극에서 개성이 뚜렷한 패널리스트 역을 맡고 싶어요.” 이 한 문장은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기회를 빼앗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복인지, 그리고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동등한 기회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 미뤘던 답장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어린이재단 홈페이지의 결연아동 답장하기 메뉴에 들어갔다. (…) 편지를 쓰고 보내려는데 뜻밖의 안내문구가 떴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으로 시에라리온 아동과의 결연 후원 및 서신교환 등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순간 가슴이 멍했다. 이사투는 경제적 빈곤, 차별 외에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질병과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랄라와 이사투(서울신문 ‘세종로의 아침’ㆍ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 전문 보기
“마침 ‘나는 말랄라’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였다. 파키스탄의 ‘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2012년 10월9일. 파키스탄 밍고라에 살던 15세 소녀 말랄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하굣길에 탈레반이 쏜 총탄에 맞아 머리와 목에 치명상을 입었다. 11세 때부터 영국 BBC방송 블로그 등을 통해 여성교육에 반대하는 탈레반을 고발해온 데 대한 보복이었다. 영국으로 이송된 말랄라는 수차례의 대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살해 위협은 계속되지만, 소녀는 더 강해진다. 이듬해 7월 유엔에 나가 전 세계 여자 어린이의 교육권을 외쳤다. “펜은 칼보다 강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합니다. 교육이 그들을 겁먹게 합니다.” (…) 세계의 다른 곳에 사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 게으름 피울 때, 말랄라는 학교에 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말랄라에게 “학교에 간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다. (…) 책의 말미에서 밝힌 대로 말랄라가 “ ‘탈레반에게 총 맞은 소녀’가 아닌 ‘교육을 위해 싸운 소녀’로 기억되길” 기도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전쟁과 가난, 성차별에서 해방돼 빛나는 삶을 개척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말랄라는 CNN의 앵커 크리스틴 아만푸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들(탈레반)은 내 몸을 쏠 수 있을 뿐 내 꿈을 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2월 오슬로에서 울려퍼질 말랄라의 외침이, 그 외침이 빚어낼 파장이, 그 파장이 만들어낼 변화가 기다려진다.”
-오슬로의 말랄라(10월 22일자 경향신문 기명 칼럼ㆍ김봉선 출판국장) ☞ 전문 보기
유교 문화권에선 교육 집착이 유난하다. 계층 고정을 수용케 하는 신의 소명이 흐릿해서다. 한데 자식을 위한 희생은 주로 엄마 몫이다. 자기 출세를 위해 받은 교육은 잉여로 남는다.
“아이들이 태어났던 당시는 2개월 출산휴가가 고작, 육아휴직은 상상도 힘든 때였다. 그래도 가까운 놀이방과 친정의 도움을 받는 행복한 조건이었다. (…) 귀가 뒤나 주말엔 늘 일과 휴식과 가사노동이 뒤섞여 있었다.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그렇다. 여성학자 조주은씨는 ‘기획된 가족’에서 “자연스레 한 시간을 다른 사람의 세 시간처럼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는 중산층 맞벌이 여성들의 지독히 바쁜 일상을 ‘압축적 시간경험’이라 표현했다. 어디서나 일이 가능한 정보통신기술 발달을 배경으로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직업맘은 경제적 동맹체인 중산층 가족을 유지하는 ‘기획자’가 됐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 가족기획의 승부처는 ‘슈퍼맘’ 역할이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 가면 엄마의 책임이 본격화된다. (…) 학교 봉사 당번부터 학원 상담까지 ‘엄마 대상’을 당연시하는 교육 환경과 대치동맘, 스칸디맘 등 온갖 슈퍼맘 열풍 또한 여성들의 자괴감을 부추긴다. ‘내가 모성이 모자라 혹은 게을러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아빠의 육아 참여가 늘었다곤 하나, ‘아빠=놀아주기’ ‘엄마=성적관리’라는 분업을 강화하는 면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내게 한계는 또렷해 보였다. 밤에나 얼굴 보는 아이가 ‘관리’가 될 리도 만무하거니와, 수행평가부터 목표 전형에 맞춘 과목별 성적관리까지 ‘엄마 매니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 순응하라고 닦달하는 게 진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 맞벌이가 아이 키우기 어려운 노동환경과 국가의 정책, 바뀌어야 한다. (…) “콤플렉스란 몰라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 이중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데서 올 수도 있다. 슈퍼우먼과 슈퍼맘이 허상임을 알고 있어도 우리 시대와 사회를 휩쓴 치열한 경쟁의 물살에서 자기 가족을 구원해 줄 동아줄로 여기고 놓지 못하는 것이다.”(‘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슈퍼맘과 이별하기(한겨레 ‘편집국에서’ㆍ김영희 문화부장) ☞ 전문 보기
“내 딸아이라면 절대로 겪지 말아야 할 씁쓸한 얘기는 한국에서 명문대 경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미영씨 일이다. 그는 졸업하기도 전에 유통 부문 대기업에 합격했고, 가장 인기가 높던 마케팅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성 CEO로 명성을 날리던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을 본보기 삼아 악바리같이 일했고, 상사들에겐 장래의 임원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 손주를 기다리던 시부모의 독촉으로 입사 6년 차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팀원들 눈치가 보여 출산휴가만 쓰고 서둘러 복귀했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맡아주셔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정신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어느 날, 덜컥 둘째가 들어섰다. 설상가상이런가, 출산을 앞두고 친정어머니가 지병으로 입원하시면서 워킹맘으로 쉴 새 없이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육아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다시 일을 해볼까 하고 재취업 관련 소식에 관심을 가져보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 딸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미래 한국의 모습은 스웨덴 지방 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한 마리아씨에게서 찾을 수 있다. (…) 동갑내기 회사원과 결혼해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본인이 출산ㆍ양육휴가를 모두 쓴 것은 물론이고 남편도 육아휴직을 활용해서 아이들을 번갈아 키웠다. (…) 그는 육아휴직이 끝난 후 회사에 근로시간 단축을 요청했고, 회사도 관례에 따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한 지 어언 15년, 자녀들이 고학년이 되자 마리아씨는 전일제(全日制) 근무로 복귀했다. 경력 단절 없이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 그는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쯤에는 임원으로 승진할 전망이란다. (…) 수많은 미영씨를 오늘도 한숨짓게 만드는 건 한둘이 아니다. 아이는 여성이 키워야 한다는 가부장적 가족 문화, 퇴근 시간에도 상사와 동료 눈치를 보며 직장을 나서야 하는 근로 관행 등 미영씨가 겪은 성차별과 경력 단절은 스웨덴에서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행복한 일자리에 관한 두 女子 이야기(10월 22일자 조선일보 ‘ESSAY’ㆍ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정책학))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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