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문민정부 사정(司正) 1호’로 구속된 김문기 상지대 전 이사장은 사학비리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그런 그가 21년 만에 총장으로 복귀하면서 촉발된 상지대 분규가 불법사찰 논란까지 얽히며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상지대 교수협의회ㆍ총학생회,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는 22일 김씨 측근이 총학생회 간부를 매수해 교수와 학생들을 사찰했다고 주장하며 김씨와 옛 재단 이사진 퇴출과 교육부 감사,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학생 A씨의 폭로는 군부독재 시절 ‘프락치 공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A씨는 지난 8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조용길 총장 비서실장의 요청을 받고 총학생회 회의 내용, 교수협 관계자와 학생들의 대화 등을 몰래 녹음해 전달했으며, 그 대가로 2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씨 측은 교육부가 요구한 ‘대학 정상화 방안’에 이들 녹취록을 붙여 “설립자 총장을 음해하는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음”이라고 적었다. 파문이 일자 조 실장은 “학생이 먼저 돈을 요구했고 녹음파일도 자발적으로 제공했다”며 책임을 떠넘겼으나, 결국 돈으로 불법정보를 사들인 사실은 인정할 셈이다.
김씨 측의 몰상식한 행태도 문제지만 이 지경까지 되도록 사태를 방치한 교육당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퇴출됐던 김씨가 이사로 복귀하고 총장까지 꿰찬 것은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2010년 법적 근거도 없는 ‘정상화 심의 원칙’을 내세워 옛 재단에 이사 과반수 추천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옛 비리재단이 복귀한 대학이 경기대 조선대 영남대 등 10여곳에 달하고 여러 대학에서 분규가 재발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아니라 분쟁‘조장’위원회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교육부도 뒤늦게 김씨의 이사 승인을 거부하고 총장 사퇴를 촉구했지만 대학 감사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김씨는 매수와 사찰까지 동원해 자신의 사퇴를 촉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을 거꾸로 ‘음해세력’으로 음해하며 두 달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ㆍ관계에 김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온존한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씨 측은 2007, 2008년에도 총학생회선거 출마자들에게 옛 재단의 복귀 지지를 요구하며 금품 제공을 약속한 정황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반교육적 행태의 극단을 보여준 이번 일로 그가 대학에 절대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교육부는 하루속히 감사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만신창이가 된 상지대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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