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한국은행은 언론에 예정에 없던 자료를 배포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이날 오전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의 취지를 설명하는 해명성 자료였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1, 2차 산업혁명은 무수한 경제적 기회와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3차 산업혁명 격인 디지털혁명은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최신호 기사를 인용한 발언이었지만, 듣기에 따라선 IT기술 기반의 신경제에 회의감을 보인 것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논란이 커질 기미에 서둘러 내놓은 해명 자료엔 “기사 내용을 단순히 소개한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이달 들어 이 총재가 공식 발언을 번복하거나 해명한 것만 세 번이다. 7일 국정감사 땐 “10만원권 발행 준비는 다 됐다”고 했다가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긴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15일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결정하고 가진 기자회견에선 “두 차례에 걸린 금리 인하 조정이 성장세 회복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가 ‘상당한’이라는 표현을 취소했다. 중앙은행장으로서 말실수가 잦은 것 아니냐는 구설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취임 직후 금리 인상을 언급한 일이 무색하게 어느덧 두 차례나 기준금리를 내린 이 총재의 재임 6개월은 실언 논란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총재의 해명대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제상황 급변(바꿔 말하면 이를 감지하지 못한 한은의 예측력 부재)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언 논란의 상당 부분은 이 총재 특유의 화법이 키운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총재 화법은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자’ 정도로 요약된다. “참여자들이 금리 인하의 긍정적 효과만 언급하기에 균형을 맞추려고” 가계부채 문제를 강조했다던 8월 외부 강연,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견해 차는 당연하다”며 경제구조 개혁 등을 주문한 이달 워싱턴 발언 등이 비근한 예다. 디지털혁명 발언 논란 역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면 평가절하하는 사례가 역사적으로 반복됐다”는 참석자 발언에 다른 시각을 소개하려다가 오해를 산 측면이 있다.
사석에서, 이 총재가 너른 시야로 대화를 풍성하게 이끄는 것을 보고 내심 감탄한 바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총재로서 공적 발언에 그러한 심모원려를 드러내는 것은 시장의 혼란만 키우기 쉽다. 통화정책 결정권자로서 한은 총재는 결정사항 이외의 것들엔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 아고라(광장)에 귀를 열어두되 뭇사람의 갑론을박을 일일이 전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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