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생산량 25억2200만톤 예상… 북미 등 생육에 적합한 날씨 이어져
곡물재고 6억2750만톤으로 최대… 주요 곡물 국제시세 끌어내려
풍년 혜택 못 받는 곳도… 서아프리카·이라크·시리아 등 에볼라·IS에 기상이변까지
2014년 기준으로 지구상에서 전년 대비 가장 번성한 생물체는 뭘까. 유엔과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해답은 바로 ‘옥수수’다. 비록 지구상 곳곳에 씨가 뿌려지고 자라는 과정에 인간의 힘을 빌리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생육에 적합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옥수수라는 종(種)이 등장한 이후로 가장 많은 열매(10억1,800만톤)를 맺을 것으로 보인다.
옥수수 생산량이 사상 최초로 10억톤을 넘어서고 밀 작황도 좋게 나오면서 근래 보기 드물게 지구촌에 2년 연속 풍년이 예상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5일 펴낸 ‘2014년 곡물작황 및 식량상황’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식량 생산량이 사상 최고였던 지난해(25억2,600만톤)와 거의 비슷한 수준(25억2,300만톤)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2년 연속 풍년으로 세계 곡물재고(6억2,750만톤)도 15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 지구촌 전반의 식량 사정도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옥수수ㆍ콩ㆍ밀은 웃고, 쌀은 울고
물론 곡물별로는 희비가 엇갈린다. 옥수수와 콩, 밀 등 북미와 유럽ㆍ러시아 등지에서 주로 재배되는 곡물은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지만 잦은 태풍 등 올해 기상상황이 좋지 못했던 아시아 지역에서는 주곡인 쌀의 생산량이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옥수수는 지구촌의 캐나다(20% 감소)를 제외하면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주요 재배지에서 폭발적인 증산이 예상된다. 아이오와와 네브래스카 등 미국 곡창지대에서 3.4% 늘어난 3억6,600만톤의 수확이 예상되고 유럽연합과 러시아(1억3,000만톤)의 생산량도 각각 8%와 12%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밀 역시 호주와 미국, 캐나다 지역에서 가뭄 피해로 소출이 줄어들겠지만, 유럽과 러시아 곡창지대의 양호한 기상과 작황 호조로 7억1,850만톤이 지구촌 전반에서 수확될 전망이다. 사상최고 기록을 세웠던 지난해와 같거나 소폭 늘어난 수치다. 콩도 재배면적 증가와 기상호조로 2013년(2억8,220만톤)보다 7% 가량 늘어난 3억976만톤이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콩의 세계 1위 생산국인 미국의 경우 9월초에도 중서부 곡창지대에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서리피해가 예년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동아시아의 주곡인 쌀은 흉년 수준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곡물에 비해서는 저조한 편이다. 미국 농무부는 쌀의 주산지인 중국과 인도의 기상악화로 쌀 생산량은 당초 예상보다 0.4%가량 줄어든 4억8,785만톤으로 예상됐다.
● 한국 밀가루ㆍ과자ㆍ식용유 가격 내릴까
2년 연속 지구촌을 찾은 풍년은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의 국제시세를 끌어내리고 있다. 밀(미국산 2등급 기준)의 경우 지난해 9월에는 톤당 311달러에 거래되었으나, 최근에는 10% 이상 낮은 279달러까지 내려왔다. 올해 4월에는 톤당 224달러에 달했던 옥수수(미국산 2등급)의 국제가격도 지난달에는 16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곡물가격 안정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는 향후 작황 호전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하락했으나, 10월 이후 지구 북반구에서 수확이 본격화하면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는 최근 내놓은 전망자료에서 올해 1분기 256포인트를 기록했던 곡물선물가격지수가 올 연말에는 200포인트 내외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2년 연속 풍년이 세계 곡물가격을 8개월만에 20% 이상 끌어내릴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추세는 쌀을 제외한 곡물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일단 반가운 소식이다. 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수입될 식용 곡물의 가격은 3분기 대비 6%, 사료용 곡물가격은 3% 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사료용 밀과 식용 옥수수의 단가 하락에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3분기 식용 옥수수는 톤당 282달러에 수입됐으나, 10월 이후에는 9% 이상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사료용 밀의 수입가격 하락 폭도 8.5%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입곡물 가격이 소비자가격에 곧바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식품업체가 원가 인상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그 반대 상황에서는 훨씬 느리게 움직이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비자단체의 강한 반발이나, 물가당국의 가격 인하 압박이 예상된다.
● 곡물가격 변동 늦가을 엘니뇨가 변수
물론 풍년의 혜택이 지구촌 곳곳에 두루 미치지는 않는다. 불행히도 에볼라 발병, 이슬람국가(IS) 반군의 준동 등으로 고통 받는 서아프리카와 이라크ㆍ시리아 등지는 기상이변에 따른 작황 악화로 오히려 식량사정이 예년보다 악화했다.
FAO는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은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에 따른 시장교란과 농업활동 제약과 함께 강우행태 마저 예년과 달라져 수백만명의 식량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아프리카 중부의 케냐와 우간다에서도 수확기 가뭄과 병충해가 겹치면서 작황이 크게 나빠져 곡물생산량이 2013년보다 3~1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또 기상여건이 최종 수확기에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태평양의 해수 흐름과 관련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올해 말부터 내년 2월말까지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이 현재(56%)보다 훨씬 높은 72%로 예상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지구촌 곡창지대에 이상기후가 발생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풍년이 계속되는 게 장기적으로 지구촌 식량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작물은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풍년으로 곡물재고가 많아지면 그 이듬해 농민들이 경작규모를 줄여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폭등하는 사례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카네기 재단의 모세 나임 박사도 “국제곡물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 농업 생산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미래의 농업 생산력 역시 감소하게 된다”며 “이는 곡물가격의 변동성을 확대시켜, 빈곤국의 식량위기를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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