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지로의 초현실주의 시어들, 현대음악 만나 탄생한 매력적인 작품
이대욱 교수 피아노 겸 지휘 맡아, 내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서 공연
“신의 축성을 받은 손은 성직자의 옷을 갈기갈기 찢는다. (중략) 욕정에 차 그녀는 그 악당의 목을 얼싸 안는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시인 알베르 지로가 1884년 발표한 시 ‘달에 홀린 피에로(이하 피에로)’다. 시에 등장하는 초현실의 세기말적 시어들이 소프라노 김수정(47)씨의 능란한 현대음악 선율과 연극적 동작을 빌어 거듭난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지휘자 불레즈가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 꼽았던, 쇤베르크의 성악곡이다.
‘피에로’가 23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앞두고 출연진들도 부쩍 바빠졌다. “당신은 기다리고, 당신은 좀 더 기다리고….” 출연진들이 연습실에서 피아노 겸 지휘를 맡은 이대욱(66)씨의 지시에 귀를 기울인다. 전통적 접근법으로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원작인 만큼 이번 무대에는 통일적 연출이 필요하다. 이씨의 요구에 맞춰 연주자들은 각자의 악보에 뭔가를 열심히 기록한다. 이번 무대에 오르는 이는 박지은(35ㆍ플루트), 서울시향의 바이올린 수석 웨인 린(33), 이 씨의 쌍둥이 딸 나연(32ㆍ첼로) 나경(클라리넷) 등 모두 6명이다.
현대음악의 걸작 ‘피에로’가 이씨에게는 낯설지 않다. 그는 1999년 미국 미시건주립대 재직 당시 이 작품을 비롯해 야나체크의 ‘관악 앙상블과 왼손 피아노를 위한 앙상블’ 등 당시 미국서도 생소한 현대음악을 공연했다.
그러나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현대음악에 대한 한국인의 진지한 요구를 확인했다”며 “이번 무대는 노래 가사와 자막이 함께 있어 청중과 쉽게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07년부터 서울대 초빙교수, 울산시향 상임 지휘자, 한양대 피아노 교수 등으로 활동 중인 그는 “한국의 현대음악을 위해 ‘쇤베르크 소사이어티’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앞둔 연습실의 언어는 영어다. 모두들 해외 무대가 낯익은 이유도 있지만 중국인 바이올린 주자 웨인 린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린은 “베토벤의 작품도 초연 당시는 현대음악이었다”며 “열린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김수정씨는 “욕망과 악의 주제를 훌륭히 형상화한 텍스트”라며 “악보에 얽매여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쇤베르크의 주문에 따라 노래와 말의 중간을 택했다”고 말했다.
‘피에로’는 앞서 2012년 12월 앙상블 트와씨가 전체를 공연한 적 있다. 이전에도 갤러리 무대 등 발췌 공연이 종종 있었지만 트와씨의 무대는 stkkk한국 최초의 전체 공연이었다. 당시 플루트를 연주했던 김예지씨는 “현대음악이 몹시 생소했던 때라 객석을 위해 추상적인 동영상까지 준비하는 등 나름 공을 들였다”며 “재공연을 염두에 뒀던 만큼 기회가 온다면 시각적 이미지를 보완해서 다시 한번 하고 싶다”고 말했다.
70분 동안 펼쳐질 23일 공연은 ‘피에로’(35분) 외에 핀란드 작곡가 하클라의 1991년작 ‘베이스 클라리넷과 첼로를 위한 카프리올’(1991년작ㆍ10분) 등 현대음악을 비롯해 브람스의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위한 트리오 a단조’(25분)가 펼쳐진다. (02)6303-1977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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