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에 스키부대로 참전했다는 한 노인이 대학로 객석에 웃음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 5일 개막한 연극 ‘월남스키부대’는 입만 열면 허풍을 쏟아내는 김 노인의 집에 생계형 도둑이 들어오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극이다. 아들 김아군의 사연과 며느리의 시선이 얽히며 잔잔한 감동까지 더한 가족극이기도 하다.
연극은 극 초반 김 노인의 정신착란 증세를 설명하기 위해 상당 시간을 들여 환상 속의 인물 김일병을 등장시키고 김 노인이 베트남 전장에서 겪었던 일상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그런데 분명 김 노인의 비극적 삶을 암시하는 장면임에도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베트남 아이들은 스쿨버스 대신 15미터짜리 ‘스쿨 구렁이’를 타고 통학하고, 작전을 나가면 스키를 타고 산을 내려오며 새참도 해결하고 군장도 정리했다”는 김 노인의 거짓말에 관객이 박장대소한다. 얼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늘어놓는 김 노인의 허풍은 극 초반 관객에게 극의 장르가 코미디임을 분명하게 상기시키는 장치다.
그렇다고 ‘월남스키부대’가 작정하고 웃기려고만 하는 연극은 아니다. 극 후반부부터는 숨겨놓았던 메시지를 은연 중 내비친다. 김 노인의 허풍과 정신착란 증세가 고엽제 부작용과 김일병의 죽음에서 비롯됐다는 설정은 반전(反戰)의 메시지로 읽히고, 그를 요양원에 보내려는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 가족의 문제가 도둑이라는 ‘타자’에 의해 해결되는 과정 등은 붕괴된 현대가정에 일침을 놓는 듯 하다.
연극은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철저하게 계산된 유머와 감동코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연출자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려고 의도한 장면에서는 예외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고,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설정한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대중을 위한 오락연극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너무 잘 짜인 대본 탓인지 결말이 예상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다.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동선 역시 비유와 상징을 담기보다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꾸몄다. 한국식 코미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감동에 대한 강박’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작품성보다 대중성에 무게중심을 둔 연극이다.
이한위, 심원철, 서현철 등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는 배우들의 연기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에서 공연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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