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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떠난 가을 마중…호숫가 놀던 햇살이 날 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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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떠난 가을 마중…호숫가 놀던 햇살이 날 반기네

입력
2014.10.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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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호에 단풍이 소리 없이 내려 앉는다. 여름이면 북적거렸을 이 호수에, 가을 볕만 반짝이며 놀다 간다. 무엇 하나 급할 것 없는 풍경이 한갓지고 평화롭다.
청평호에 단풍이 소리 없이 내려 앉는다. 여름이면 북적거렸을 이 호수에, 가을 볕만 반짝이며 놀다 간다. 무엇 하나 급할 것 없는 풍경이 한갓지고 평화롭다.

이 가을, 수채화 같은 풍경 속을 달리는 로맨틱한 드라이브를 꿈꾼다면 국도 75호선을 떠올린다. 경기도 가평에서 강원도 화천까지 가는 도로다. ‘드라이브 좀 해봤다’면 무릎 치며 동의할 수 있을 거다. 하늘만큼 푸른 청평호와 북한강을 지나면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 석룡산 등 높이가 1,000m를 훌쩍 넘기는 큰 산들이 바다처럼 펼쳐진다. 호숫가, 강변 마을이 정겹고, 골짝으로 파고드는 길에는 설악산을 출발한 단풍무리가 막 지나는 중이다. 눈 돌리는 곳마다 마음 평온해질 풍경이니, 가을이 주는 선물이 이 길에 부려져 있다.

수상스키어가 가을 청평호를 만끽한다.
수상스키어가 가을 청평호를 만끽한다.

● 청평호ㆍ북한강 따라 나타나는 그림 같은 풍경

국도 75호선 시작은 청평대교 부근이다. 청평댐입구삼거리에서 고성리ㆍ호명리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가면 청평댐. 여기 지나면 오른쪽으로 청평호가 슬그머니 등장한다. 여름이면 수상레저를 즐기는 인파로 북적였을 이 호수에, 한낮 부드러운 볕만 반짝거리며 놀고 있다. 호숫가에 정박한 보트들이 물결에 맞춰 느릿하게 흔들리고, 수변에 잎을 발갛게 물들인 나무들은 가을 맞을 채비를 막 끝냈다. 무엇 하나 급할 것 없는 여름의 뒤안길이 이토록 한갓지고 평화롭다. 텅 비어 고요한데도 눈이 즐겁고 가슴은 여름보다 두 배 더 뛴다. 이러니 청평호는 여름에만 찾을 일이 아니다.

호수 따라 가는 길이 참 곱다. 고요하게 들어앉은 집과 마을은 유럽 여느 호숫가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아름답다. 가을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이 길에 널렸다.

가평읍까지 이어진 길에는 친숙하고 또 들르기도 수월한 곳들이 많다. 굽잇길 따라 20여분 가면 고개 중턱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그림 같은 건물들. 쁘띠프랑스(고성리 청소년수련원)다. 젊은이들이 실제로 프랑스 다녀오기가 만만치 않으니, 여기서라도 그 문화를 체험해 보라고 한홍섭 회장이 프랑스문화마을을 조성해 2008년에 문을 열었다. 그해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를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이 드라마가 ‘대박’이 나며, 지금은 가평의 명소가 됐다.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에 관한 자료, 150년 된 프랑스 고택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주택전시관, 맑은 소리가 인상적인 오르골 공연 등 프랑스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전망타워에서 보는 청평호도 멋지다. 숙박도 가능하다.

쁘띠프랑스 지나 나지막한 고개 넘어 만나는 ‘산모퉁이’라는 작은 식당은 메모해 둔다. 이 앞으로 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다. 넓어지는 북한강 물길이 호수 같다. 충북 제천의 청풍호 못지않은 운치에 눈이 놀란다. 어깨 견준 준봉들 아래로 유람선도 다닌다.

유럽 여느 마을 못지 않은 운치가 가을 청평호에 있다.
유럽 여느 마을 못지 않은 운치가 가을 청평호에 있다.

길은 남이섬(춘천)과 자라섬 앞을 지나니 들러도 좋다. 가평역 삼거리 부근이다.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여행이 되면 목적지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마음 사로잡는 곳이 나타나면 엉덩이 붙이고 눌러 앉으면 그만, 그곳이 곧 목적지이자 종착지가 되는 셈이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남이섬에서는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은행나무 길도 구경한다. 가을이 내려앉아 운치가 있다. 은행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갈색으로 물들면 여느 단풍나무보다 더 몽환적이다. 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강변을 산책하면, 이 아름다운 섬은 여느 계절보다 가을이 제멋이라는 생각 든다. 자라섬에도 잠깐 쉬어가기 좋을 곳이 있다. 캠핑장을 지나 강변까지 가면 쉼터다. 물길 옆으로 벤치도 있고 물 위로 놓인 나무 데크도 있다. 꼭 캠핑을 하지 않아도 느긋하게 가을 오후 즐기면 된다.

청평호, 쁘띠프랑스, 남이섬, 자람섬, 혹은 지금까지 여정의 어느 지점이든 마음 끌리는 곳이 있다면 넉넉하게 시간 보내며 가을을 만끽하기로 한다.

가평읍을 지나면서부터 단풍이 서서히 짙어진다.
가평읍을 지나면서부터 단풍이 서서히 짙어진다.

● 단풍 내려앉는 계곡 따라 가을 한복판으로

가평읍을 지나고 북면 방향으로 간다. 청평호와 북한강이 사라지고 이번에는 큰 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가평천을 따라 이 큰 산들의 골짝을 후비며 지난다. 호숫가 풍경과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단풍 빛깔은 더 진해진다.

길을 달리다 마음 내키는 산 속으로 들어, 오를 수 있는 만큼 올라본다. 용추폭포(와룡추)가 유명한 연인산(1,068m)의 용추구곡은 승안삼거리에서 우회전 해 10분쯤 가면 들머리다. 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소(沼)를 비롯해 아홉개의 비경이 차례로 등장한다. 전부를 구경하기 부담스럽다면 용추폭포까지만 간다. 탐방안내소에서 약 2km 거리니 가볍게 산행할 수 있다.

북면사무소삼거리에서 적목리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명지산(1,267m) 자락이 나타난다. 가평의 단풍 명산이다. 산세는 웅장해도 등산로가 그리 험하지 않고 숲도 울창해 가을철에 인기다. 가다보면 명지산 익근리주차장이 보인다. 탐방안내소에서 승천사를 지나 삼거리까지 약 4km 구간은 경사가 완만해 걷기 수월하다. 중간에 익근리계곡이 나타나 등산로와 나란히 간다. 폭포와 소가 차례로 나타나며 눈을 즐겁게 만든다. 명지산의 으뜸 절경으로 꼽히는 명지폭포는 이 계곡을 따라 3km 쯤 가면 있다.

화악산 중봉과 석룡산 사이를 흐르는 조무락골. 이곳은 벌써 단풍무리가 훑고 지났다. 이끼위에 소복하게 쌓인 낙엽과 맑은 물 떨어지는 폭포가 어우러져 선계를 만든다.
화악산 중봉과 석룡산 사이를 흐르는 조무락골. 이곳은 벌써 단풍무리가 훑고 지났다. 이끼위에 소복하게 쌓인 낙엽과 맑은 물 떨어지는 폭포가 어우러져 선계를 만든다.

명지산 맞은편은 화악산(1,468m)과 석룡산(1,147m) 자락이다. 단풍명소로 유명한 조무락골이 화악산 중복(1,423m)과 석룡산(1,147m) 사이를 흐른다. 명지산 익근리주차장에서 15분쯤 가면 삼팔교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회전하면 계곡이 시작된다. 풍광이 어찌나 빼어났던지 새들이 이곳에서 춤추며 즐겼단다. 그래서 조무락(鳥舞樂)이다. 계곡을 따라 폭포수가 돌아 흐르는 골뱅이소를 비롯해 중방소, 가래나무소, 칡소 등이 이어진다. 조무락골의 백미인 복호동폭포는 호랑이가 엎드린 것 같은 모양의 3단 폭포다.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쳐 부챗살처럼 퍼지는 모습이 압권이다. 6km에 달하는 계곡을 다 걷기가 버겁다면 들머리 주변에서 가볍게 산책을 즐겨도 좋다. 삼팔교에서 조무락골산장까지는 걸어본다. 약 1.3km 구간이 괜찮다. 길이 평탄하고 옆으로 계곡이 따라간다. 이끼 낀 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산 속이라 기온 낮은 탓에 낙엽도 소복하게 쌓였다. 계곡은 단풍이 막 훑고 지났다. 고요한 산길에 낙엽 밟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린다. 복호등 폭포는 산장에서 30분쯤 더 올라야 한다.

다시 돌아와 삼팔교에서 5분쯤 가면 왼쪽에 용소폭포(적목용소)가 나온다. 힘 들이지 않고 볼 수 있는 절경이니 들렀다 간다. 나무다리가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고 주차장도 마련돼 있으니 찾기 어렵지 않다. 이 다리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폭포가 보인다. 폭포는 크고 작은 소를 만들며 3단으로 떨어진다. 물이 떨어지는, 짙푸른 소는 깊이가 3m가 넘는단다. 용이 하늘로 오르다 어느 여인에게 발견돼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지며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이 흘러 한 여름에도 서늘한 느낌을 줄 만큼 운치가 있다. 발길 돌리기 아쉽다면 무주채폭포까지는 간다. 용소폭포에서 국망봉으로 등산로를 짚어 1km쯤 걸으면 무주채폭포다. 옛날에 무관(武官)들이 이곳에서 나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춤을 추었다고 붙은 이름이다.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볼만하고 주변 숲도 울창하다.

도마치재는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제법 알려진 코스다.
도마치재는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제법 알려진 코스다.

국도 75호선의 종착지는 도마치재(690m)다. 가평에서 화천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갯마루 주변에서 보면 겹겹이 늘어선 큰 산들이 장쾌하다. 먹먹한 가슴 탁 트이고 머리가 한결 맑아진다. 자전거 한 대가 고개를 힘겹게 넘어간다. 보고 있으면 퍽퍽한 일상, 죽고, 못 살 것 같은 날들이 추억으로 굳어진다. 살면서 이런 길 하나쯤 마음에 품어야 한다.

● 여행메모

국도 75호선이 시작되는 청평대교 부근까지 가는 길도 운치가 있다. 국도 6호선, 46호선을 번갈아 타고 가면 된다. 한강을 따라 춘천으로 향하는 도로다. 서울춘천고속도로 화도IC로 나와 국도 46호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청평대교 부근에서 도마치재까지 총 길이는 약 60km다. 차로 쉬엄쉬엄 이동하면 2시간이면 닿는다. 그러나 볼거리 구경하며 쉬어가려면 한나절도 모자랄 길이다. 예쁜 정원으로 이름난 아침고요수목원, 호명호수로 유명한 호명산 등도 국도 75호선 부근에 있다. 지난주 가평읍에서 도마치재 구간에 단풍이 많았다. 조무락골 단풍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청평대교에서 가평읍까지는 이번 주말쯤 단풍이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단풍 시기 못 맞처도 실망스럽지 않다. 가을 풍경 참 예쁘다.

가평읍에 있는 송원막국수(031-582-1408)는 막국수가 유명하고 백둔리 인천집(031-581-5533)은 두부전골이 이름났다. 북면에 있는 명지쉼터가든(031-582-9462)은 가평 특산물인 잣을 이용한 잣국수로 알려졌다.

가평=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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