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언젠가부터 보고 있노라면 그냥 기분 좋아지는 그림들 중 하나가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그림들이다. ‘차 안에서(in the car)’ 또는 ‘이것 봐 미키(Look Mickey)’와 같은 작품을 보면 뭔가 익숙하고 친근하면서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익사하는 여자(Drowning Woman)’를 보면 그 대사나 얼굴표정에서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1960년 초 리히텐슈타인은 첫 번째 결혼에서 파경을 경험했다. 비슷한 시기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미모의 여성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가 ‘익사하는 여자’다. 이 작품은 ‘사랑을 위해 달려라(Run For Love)’라는 만화책의 한 장면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 한다. 작품 속 여성은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을 받은 후,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비극적인 모습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삼원색을 바탕으로 점과 두꺼운 테두리를 사용해 주요 인물들을 더 간단하게 그리는 특징이 있다. ‘익사하는 여자’ 역시 물에 빠지고 있는 여자가 부각됨으로써 비극적인 정서가 보다 극대화되어 있다. 해서 사람들은 이 한 장면만 보더라도 내용과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원래 장면에서보다 정서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만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모방했다고 하지만 그 이상의 슬픔과 비극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책에 나오는 장면이나 캐릭터를 많이 그렸다.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그대로 발췌해 그렸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끊임없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 예술 비평가는 그를 미국 최악의 예술가라고 칭했고 미국의 유명한 잡지인 ‘라이프(LIFE)’ 또한 미국 최악의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또한, 상업적인 이미지를 모방한 것에 대해 예술가의 자질이 부족하고, 너무 다가가기 쉽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로 자리매김 했고 그의 작품들은 대중들로부터 매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13년 미술작품 경매 조사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그 해 미술 경매에서 거래된 가장 고가의 미술 작품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익숙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에게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 중 어떤 것은 여러 번 보여주고 또 어떤 것들은 적게 보여줬다. 그리고 나서 어느 그림이 더 좋은지를 질문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더 많이 보았던 작품을 더 좋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단순 노출로 인해 익숙해진 사물이나 대상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과 단어들이 들어간 글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평가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간단한 글을 의미 전달이 잘 된다고 더 높게 평가하고 선호했다. 한 예로 이름이 복잡한 음식과 아주 간단한 음식을 들려주면서 무엇이 위생상 안전할까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복잡한 이름보다 단순한 이름의 음식이 더 안전하다고 답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익숙한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 안전성이 입증된 것이다. 때문에 익숙한 것은 우리를 편하게 하고 우리의 뇌는 그것을 인식하게 됨으로 인해 익숙한 것을 택하도록 설정돼 있다. 바로 쉽고 편하고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들은 그런 단순함을 갈구하고 있다. 복잡한 것보다 좀 더 단순하고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이 편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가벼운 책일수록 베스트셀러가 되기 쉽다. 단순한 디자인일수록 판매율이 더 높다. 그럼에도 가볍고 단순한 것은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깨달음이나 감동은 일상을 넘어선 특별한 것에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친숙하고 단순한 것에도 깨달음은 존재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감동하는 대중성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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