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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육상 여제’의 발로 쓴 편지

입력
2014.10.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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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마냥 둥글게 주름진 눈과 코, 이를 다 드러낸 채 커다랗게 반원을 그린 입술. 화가 이순구의 ‘웃는 얼굴’ 연작을 쏙 빼 닮은 함박웃음은 보는 이의 입까지 절로 벌어지게 한다. 19, 20일 인천 장애인아시아게임 여자 200m, 100m T36(뇌성마비) 결승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낸 전민재(37) 선수 얘기다. “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저를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의 사랑을 채찍 삼아 더욱 더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못생긴 전민재 선수가~ㅋㅋㅋ” 그가 잃어버린 말과 뒤틀린 손 대신 발로 쓴 편지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 그는 다섯 살 때 뇌염을 앓고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 된 뒤 집에 틀어박혀 살았다. 사춘기 땐 TV에서 본 영화 제목처럼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란 발 편지를 건네 부모의 속을 후벼 팠다. 열아홉에야 초등학교 문턱을 넘은 그는 중2 때인 스물여섯에 육상에 입문하며 새 삶을 얻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 런던 패럴림픽 100m, 200m 은메달, 2013 세계선수권대회 200m 금메달…. 그는 런던 패럴림픽 당시 인터뷰에서 땅바닥에 발로 쓴 글씨로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꼭 1위를 하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 146㎝ 단신의 화려한 질주 뒤엔 지독한 훈련이 있었다. 어머니 한재영씨는 한 인터뷰에서 “발톱이 빠져 피를 흘리면서도 폐타이어를 허리에 묶고 쉬지 않고 논두렁 밭두렁을 달렸다”면서 “내 딸이지만 정말 독하다”고 말했다. 육상선수로는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 세상과 다시 만난 지 꼭 스무 해가 되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은퇴하고 싶단다.

▦ 전 선수는 런던 패럴림픽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저처럼 (체계적인)연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장애인 선수들을 위해 육상 실업팀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속팀이 없다. 육상만이 아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등록된 선수 1만5,000여명 가운데 실업팀 소속은 189명뿐이다. “저는 제 목표를 위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장애인육상연맹에도 따듯한 관심과 격려 부탁 드립니다.” ‘육상 여제’의 발로 쓴 편지는 이번에도 간절한 호소로 끝을 맺었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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