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기호 의원(정의당)이 어제 63개 대기업 소속 사외이사 786명을 전수 조사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사외이사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수 차례 있었으나 이번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63개 중 상장회사의 사외이사에 대해 전수조사를 단행해 정교한 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사외이사 직업군 분석결과 교수 등 학계가 258명(32.82%), 정부부처 등 관계가 193명(24.42%), 기업인이 165명(20.99%), 법조인 116명(14.76%)이었다. 이중 관료와 판?검사 경력 법조인 등 권력기관 출신은 275명(35.03%)이었다. 특히 116명의 법조인 사외이사는 2,000회 이상의 이사회에 참석해 안건에 반대한 사례는 2012년 4회, 2011년 2회 등 단 6회뿐이었다. 사외이사제도가 기업의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법조계에 대한 로비와 전관예우의 창구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금융감독원의 분석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대 그룹 91개 상장 계열사는 2,151건의 안건을 처리했는데도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한 건도 없었고, 한번이라도 의견을 낸 사외이사는 14명에 불과했다.
사외이사제도는 기업 오너나 경영진의 전횡에 대한 감시ㆍ감독을 위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하지만 경영진에 의해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기업의 거수기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정부나 법조계에 대한 로비 등에 이용되면서 폐해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처럼 사외이사제도가 당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기업의 방패막이나 보험용으로 전락한 것은 선임방식의 문제 때문이다. 기업 경영진이 대부분의 사외이사를 임명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는 구조다. 사외이사가 새로운 특권ㆍ권력기관으로 자리잡는 경우도 있다. KB금융 사외이사는 회장과 3인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별도 위원회를 통해 선임된다. 보수도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넘기도 하고 이들이 차기 회장까지 선출한다.
사외이사제도가 정상화하려면 선임방식을 고쳐야 한다. 지금처럼 경영진이 마음대로 선임할 경우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밖에 없다. 독립된 외부기관에서 후보를 추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후에 책임을 강하게 묻는 방안도 있다. 강원랜드의 경우 부실한 지방공기업을 지원했다가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경영진과 함께 사외이사까지 감사원으로부터 문책을 당했다. 어떤 경우라도 사외이사 자리가 특정 직업군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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