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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에게 500만원 주택 개량비… 토박이에겐 지원 없어

입력
2014.10.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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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떠나 보내고 덜렁 남은 큰 집, 수리ㆍ연료비에 노부부에겐 큰 짐으로

방 한 칸ㆍ욕실ㆍ부엌 겸 주방ㆍ화장실

10평이면 노후 생활에 충분, 건축비도 평당 500만원 정도

郡이 나서 제대로 된 건축가 연결

2인용 주택 도면 보급하고 주택 자금 장기저리융자 해 줘야

외관은 멀쩡하지만 속은 방 한 칸 데우는데도 연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김씨 부부의 시골집.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 농가주택을 제대로 바꿔 주어야 한다.
외관은 멀쩡하지만 속은 방 한 칸 데우는데도 연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김씨 부부의 시골집.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 농가주택을 제대로 바꿔 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초에 발표하는 전국에서 가장 싼 집과 비싼 집. 비싼 집은 서울에 몰려있지만 싼 집은 전국에 퍼져 있고 매년 달라진다. 거래가 안되어서 평균지가로 적당히 매겨졌던 가장 허름한 집이라도 주변에서 집이 비싸게 팔리면 대지 가격이 덩달아 뛰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싼 집은 작년에는 경북 울진군에 있더니 올해는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로 옮겨갔다. 33평 대지에 8평짜리 집이 공시지가 82만6,000원. 그러나 송이도 이장은 “이 지역 땅값이 5만원”이라며 그렇게 살 수 있는 집은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단독주택의 경우 공시지가는 실거래가의 70%선이지만 그래도 차이가 좀 있다.

45평 대지에 12평 조금 넘는 집이 99만3,000원으로 공시지가가 나와 2등에 오른 경북 영양군 입암면 대천길 주택은 육지에서는 가장 싼 집. 게다가 김용주(50) 이장은 “여기 땅값이 최근에 3만원에 거래됐는데 그것도 외지인이라 더 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육지에서가 아니라 전국에서 제일 싼 집일 수도 있다는 말. 이장님 단언을 믿고 실거래가는 전국에서 가장 쌀 지도 모르는 경북 영양의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영양군은 인구 1만8,383명(영양군청 통계는 2012년에 멈춰있다)으로 울릉군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군이다. 봉화 청송과 더불어 가장 산골짜기 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영양군 입암면을 가보면 높은 산 사이로 희한하게 널찍한 땅들이 나타난다. 그만큼 인가가 모여있어 ‘산 넘어 한 집, 고개 넘어 한 집’인 산골마을 특성과는 거리가 있다.

입암면에서도 문제의 가장 싼 집이 있는 구레두들 역시 비좁은 산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전망이 탁 트이면서 너른 땅이 나타난다. 두들은 언덕의 사투리라는데 마을 공동주차장과 농구대까지 있는, 엄연한 동네다. 한때 20가구가 살았다는 이곳에는 이제는 6가구만 남아있다. 공시지가 최저가 집은 지금은 빈집이다.

이곳에 있는 집들은 원래 초가였던 곳에서 개량된 집과 아예 새로 지은 집으로 나뉜다. 초가였던 곳에서 개량된 집의 특징은 1자형 홑집인 원형에 툇마루 앞쪽으로 차양을 내고 유리문과 벽을 달아 방한을 하려 했다. 가장 싼 집도 그렇게 방한을 했지만 더 이상 살 수 없을 만큼 퇴락해서 버려진 상태. 주인은 아랫마을로 이사를 했다. 이곳 두들이 동쪽으로 트여있다 보니 집들이 모두 동향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마을의 특징이다.

가장 싼 동네에서 가장 싼 집은 빈집이라 이곳의 실제 주거생활을 엿보기 위해 그 뒤편 집을 찾았다.

김용정(78) 김정희(76) 부부가 사는 집 역시 처음에는 두 칸 짜리 초가집이었지만 식구가 늘어나면서 점차 덩치가 커진 전형적인 농가주택. 두 칸에서 시부모 시누이 시동생과 살다가 3남 1녀를 기르며 처음에는 옆으로 방을 늘려나가다가 앞에 복도를 만들어서 식당과 욕실을 앉혔다. 이 본채와 더불어 아랫채와 창고가 따로 있다. 지금은 모두가 분가해서 노인 둘만 살고 있다.

이 집은 농가주택으로는 드물게 창고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씨 부부가 깨끗한 집을 갖고 싶으며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곳은 김용정씨가 태어난 집. 할아버지대부터 들어와 산 것으로 기억을 한다. 흔히들 농가주택에 대한 지원이 이것저것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는 이들은 극소수. 김씨 부부 역시 이 집의 방을 늘리고 지붕을 바꾸면서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 목돈이 모이면 방도 내고 복도도 붙이고 욕실도 만들었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푸세식으로 밖에 따로 있다.

임시변통으로 계속 고치다 보니 집은 커졌지만 단열은 형편없다. 겉으로 봐서는 아주 멀쩡한데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서도 밖이나 온기 차이가 별로 없다. “방 한 칸만 (기름보일러) 불을 때도 겨울에 기름을 8드럼이나 쓴다. 무서워서 못 쓴다. 영감 혼자만 옥장판 틀어놓고 누워있으니까 추워 죽겠다”고 부인 김정희씨가 불평을 한다. 보일러용 등유 1드럼 시세는 24만원. 8드럼이면 192만원이다. 산나물이나 고추 사과 팔아서 이리 저리 변통하는 농가살림에서는 큰 부담이다. “아래채는 물 새지, 이 큰 집 뭐 필요하나. 고칠라 해도 돈이 없다.”

400미터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이 동네는 기온도 낮고 바람도 많다. 10월 중순인데 벌써 무서리가 왔다. 동향이라 겨울에 햇볕이 들어오는 시간도 짧다.

마을에는 군에서 만든 공동주차장과 가동은 하지 않는 찜질방도 있다. 하지만 차가 있는 집은 6가구 가운데 귀농한 두 가구 뿐. 원래 토박이인 4가구는 차도 없다. 시장이나 병원을 가려 해도 버스 타는 입암까지 30분은 꼬박 걸어야 한다. 허리가 굽어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로서는 더 힘든 길이다. 결국 버스 타는 데까지 택시를 부르면 1만5,000원을 줘야 한다. 그나마 버스라도 자주 있으면 병원이 있는 안동시 임동면이나 영양읍으로 가기가 편한데 하루 세 번만 버스가 다닌다. “아침 7시 차는 겨울에는 캄캄해서 타러 가지도 못한다. 눈 오면 내려가지도 못하고.”남편인 김용정씨 말이다. 아침 버스를 빼고 나면 결국 버스는 하루 두 편 있는 셈이다. 결국 올해 부인은 귀가 아파 7번을, 남편은 침 맞으러 8번을 병원을 갔는데 번번이 택시를 부르다 보니 병원비보다 교통비가 훨씬 더 많이 나왔다. “오전 10시 버스 없앤 게 제일 아쉽다. (선거운동 할 때는) 버스 들어오게 한다고 군수가 (손가락으로) 약속도장까지 찍어놓고 안한다.” 부인의 말이다. “차 있는 집에 태워 달라꼬? 이웃집이 누가 내 사정 봐서 해주나.”

극장이나 영화관 미술관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목욕탕을 가본 지도 오래다. “물어보나 마나지. 사람새끼가 그거 안가고 싶나. 눈뜨면 밥 먹고 일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나.” 흥이 나면 노래도 잘하는 김정희씨는 문화생활은 텔레비전이 전부. 더한 문화생활을 꿈꾸지도 못한다. “집이나 한 칸 따뜻하면 좋겠다. 창고 지붕 고쳐야 하는데 그것도 돈 천만원 든단다.”지방에서 공사를 하니 바가지는 더 많은 듯했다. 1평도 안 되는 세탁실을 고치는 데에도 4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작은 집과 튼튼한 창고이다. 입암면의 귀농자인 남무호(62)씨는 2004년부터 300평 대지에 30평 집을 지어서 2010년에 귀농했는데 “살아보니까 큰 집 다 소용없습니다. 다시 지으면 벌레만 안 들어오게 20평 이내로 지을 겁니다. 연료비 신경 쓰이면 아무래도 즐거움이 없지 않습니까”고 말한다.

시골에서는 기름과 나무보일러, 장작난로 등의 연료가 주로 사용된다. 최근 들어 지자체가 목가공품을 연료로 쓰는 펠릿보일러 설치비를 지원해주고 있으나 펠릿 자체를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가격이 언제 오를지 몰라 안심하고 설치하기도 힘든 상태.

또 귀농자들에게는 500만원의 주택개량비를 지원하지만 토박이들의 집에는 지원이 없다. 정작 토박이들의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도 지원을 받기 힘들다.

단 두 식구인 김씨 부부에게 필요한 집은 방 한 칸, 욕실, 부엌 겸 주방으로 10평 내외로 가능하다. 지금 있던 집을 아예 허물고 새 집을 작게 단단하게 지어준다면 노부부에게는 훨씬 살기 편할 것이다. 영양군의 평균 가구수가 2.1인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 영양군 전체에 가장 필요한 주택이 바로 이렇게 작은 식구가 따뜻하고 연료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고민은 다른 농촌지역에도 마찬가지이다. 목조주택전문가가 단독주택 제대로 짓기에 대해 조언했던 집 이야기 8회(▶기사보기)에 따르면 평당 500만원이면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있다. 지방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제대로 된 건축업자를 못 만나서 농민들은 매번 찔끔찔끔 집 고치는 데에 돈을 쓰면서도 편한 집에서 살아보지 못한다.

군청이 나서서 제대로 된 건축가들의 2인용 주택 도면을 보급하고 정직하게 집을 짓는 이들까지 알선하고 주택자금을 장기저리융자를 해줘서 농민들이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보는 날은 오기가 힘든 것일까? 귀농민이 아니라 살고 있는 주민들을 제대로 대접할 때 귀농은 자연스레 늘어난다.

“집 지어 줄라나”묻던 김정희씨가 “기자가 집은 못 지어준다”고 하니까 일이나 하러 가겠다고 나선다. 허리에 척 묶어 드는 고추따는 주머니를 보니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농촌에 널린 비닐포대를 오리고 옆에는 헌 우산에서 나온 방수천을 덧댔다. 연갈색과 청색 회색의 체크무늬가 세련되게 만났다. 허리에 끈으로 묶도록 되어 있다.(사진 가운데) “솜씨가 대단하다” 하니까 역시 허리에 묶게 되어 있는 작은 씨주머니(왼쪽)와 큰 배낭모양의 산나물주머니(오른쪽)도 들고 온다. 위에 있던 나락포대의 지퍼를 아래쪽으로 돌린 산나물 배낭은 내용물을 거꾸로 쏟아 붓지 않아도 지퍼만 열면 산나물을 뺄 수 있어서 편리하다.

농촌살림 하는 이들이 포대자루를 재활용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쓰는 일이야 흔히 보지만 디자인까지 이렇게 세련된 경우는 드물다. 이런 저런 마을기업 이야기가 많이들 나오는데 이런 재활용품은 시장이 없을까. 독자분이라면 얼마나 주고 사시겠습니까? 이 할머니 디자이너에게 시장을 만들어주십시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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