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기초는 사람들의 의견에 근거하기 때문에 첫 번째 목표는 그 의견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일이어야 한다. 누가 나에게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남긴 명언이다.
여기서 ‘신문’을 오늘날 기준에 따라 해석한다면 언론, 더 넓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포함한 모든 매체로 해석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상주의자 제퍼슨의 웅변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정부의 기초가 사람들의 의견에 근거한다”는 정의는 오늘 대한민국에 많은 울림을 남긴다. 사이버 사찰이니, 사이버 망명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민주주의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환경은 무엇보다 의견의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쪽으로 쏠리는 위험도 줄어들고,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보다 훌륭한 방안을 찾을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라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민주시민의 필수 덕목인 것이다.
우리 정부에 이런 이상주의적 언론관을 가진 공직자가 그것도 국방부에 존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주 7년 만에 남북한 군이 장성급 회담을 가졌는데,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우리측 대표는 “자유민주주의 특성상 민간단체의 풍선 날리기와 언론 보도를 통제할 수 없다”며 대북 전단살포 중단요구를 거절했다. 우리 측 대표가 북한의 대응 총격으로 휴전선 인근 주민이 피해를 입을 위험성 정도는 감수할 만큼 언론의 자유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지닌 것 같아 언론 종사자로서 마음 든든해야 할 것 같다. 휴전선 인근 주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런데 정작 언론자유 수호에 앞장 서야 할 검찰은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 고위관료들과 주요 SNS업체 책임자들을 불러 “사이버 유언비어 명예훼손에 대한 상시 점검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SNS 사찰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작성된 문건이 폭로되고 국정감사에서 질책이 이어지자 황교안 법무장관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가장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며 비판을 피해갔다. 바로 “악의적인 허의사실 유포가 있을 경우만 수사한다”는 것이다. 황 장관의 말대로 표현의 자유에 한계는 존재해야 한다. 타인의 성이나 인종, 종교 등의 차이를 모욕하는 발언을 보호해 줄 수는 없다. 황 장관은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의 전해철 의원은 “악의적이라는 검찰의 판단기준 자체가 자의적”이라고 되받았다. 누구의 주장이 옳을까.
야당 등에서는 문제가 된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분노를 표시한지 불과 이틀 후 열렸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회가 합의한 특검법을 거부하자 세월호 유족들에게 쏟아진 온갖 야비하고 악의적인 유언비어와 명예훼손에 대해 사법당국이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울이 이렇게 기울어져서는 검찰에게 표현의 악의 여부에 대한 판단을 맡길 수 없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의견이 다른 이에게 “당신의 글을 경멸하지만, 당신이 계속 글을 쓸 수 있기 위해 목숨을 걸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대북전단 살포를 고집하는 북한 인권운동가들의 표현의 자유만큼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의 표현의 자유도 보호돼야 하는 게 민주주의 사회다.
정부가 토마스 제퍼슨이나 볼테르 같은 신념을 지키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신들이 조롱조로 ‘한국 네티즌 대거 사이버 망명’소식을 전하는 국제망신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권위주의 정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실현한 모범국가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던 대한민국이 아닌가.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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